Calypso · 한국 기업

10원짜리였다

1963년 9월 15일, 남대문시장. 한 봉지가 10원에 풀렸다. 사람들은 옷감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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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아무도 안 사 갔다

1963년 9월 15일, 남대문시장

한 남자가 종이봉지를 풀었다. 한 봉지에 10원.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이던 해였다.

사람들이 봉지를 들고 갸웃거렸다.

실타래야, 옷감이야. 사람들은 그렇게 알았다고 한다.

그 봉지에 든 게 한국 첫 라면이었다.

CH. 2

그해 한국

1인당 GDP 100달러

그해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은 식당이 아니었다. 남대문시장 한구석,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끓이는 솥 앞이었다.

1963년 한국 GDP/인
≈$100
같은 해 일본
약 7배

한 그릇 5원에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을 끓여 팔았다. 이름은 꿀꿀이죽.

전중윤은 그 줄을 보고 사표를 썼다. 그는 그때 동방생명 부사장이었다.

CH. 3

봉투 하나

사이타마, 묘조식품 란잔공장

전중윤이 일본 라면 회사 사장 오쿠이 키요스미 앞에 섰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무상으로.

면 만드는 법, 기름에 튀기는 법, 포장하는 법. 2주 동안 공장을 스무 차례 넘게 보여 줬다.

딱 하나, 스프 배합만 빼고.

귀국 전날 밤, 오쿠이의 비서가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손글씨로 적힌 스프 레시피가 있었다.

전 회장의 양심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의 만남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전한다.
오쿠이 키요스미 친서, 1963년
CH. 4

사표를 낸 부사장

전중윤이 본 것

보험사 임원이 면 만드는 회사를 차린 일은 그때 한국에서 흔치 않았다.

꿀꿀이죽 한 그릇
5
미군 부대 잔반을 끓여 팔던 가격

그가 본 건 그 줄에 선 사람들이었다.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는 보험사 임원이 일본행 표를 끊었다.

보험사를 나온 게 1961년. 일본행은 그 2년 뒤였다. 라면이라는 단어를 아는 한국 사람은 아직 없었다.

CH. 5

그래서 지금

63년이 지났다

한국 1인당 연간 라면 소비
79
세계 2위 (1위 베트남 81개)

라면이 식탁에 올라온 건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봉투 하나가 건너왔다. 그 안에 한국 식탁 한 칸이 들어 있었다.

— 끝 —
카톡 한 줄

한국이 라면을 그렇게 먹는 건, 일본 회사 사장이 봉투 하나에 비법을 적어 건넸기 때문이라고.

출처 (16)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