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인물

천 원을 부르자 만 원을 냈다

1943년 안동, 낡은 책 한 권에 값이 매겨졌다. 주인은 천 원을 불렀고, 그는 만 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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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주인은 천 원을 불렀다

천 원을 부르자, 만 원을 냈다

1943년, 경상북도 안동의 낡은 책 한 권이 매물로 나왔다. 주인은 값으로 천 원을 불렀다.

책을 사러 온 사람은 전형필이었다. 부른 값을 듣고, 전형필은 열 배인 만 원을 내밀었다.

부른 값 → 치른 값
천 원 → 만 원
부른 값의 열 배
CH. 2

전형필은 재산으로 유물을 되샀다

종로 부잣집 아들이 정한 것

전형필은 1906년, 서울 종로의 소문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물려받을 재산이 컸다.

휘문고보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에서 법을 공부했다. 돌아온 전형필은 그 재산으로 할 일을 하나 정했다.

1930년대, 일본인 수집가들은 조선의 그림과 도자기와 책을 헐값에 사서 바다 건너로 실어 갔다. 전형필은 흩어지는 유물을 되사 모으기 시작했다.

값이 오르든 말든 사들였다. 조선의 것이 조선에 남으려면 누군가는 값을 치르고 사둬야 했다.

일본인 수집가
조선 유물을 사서 바다 건너로 반출
전형필
그 유물을 되사서 조선에 남김
CH. 3

일제가 한글을 지우던 때였다

지우려던 때, 사들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다. 한글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붙잡혀 갔다. 일제는 학교에서 조선말을 지우고 있었다.

그런 때에 안동에서 나온 책은 보통 책이 아니었다. 훈민정음의 원본, 세종이 한글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적어놓은 해례본이었다.

소장자는 가치를 몰라 천 원을 불렀다. 전형필은 값을 깎기는커녕 열 배를 얹었다. 총독부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사둬야 했다.

책 주인에게 만 원을 주고, 천 원은 수고비로 받으시오.
전형필이 중개인에게

만 원은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 전형필은 해례본을 품에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CH. 4

밤마다 베개 밑에 두고 잤다

전쟁통, 베개 밑에 두고 잤다

1950년, 6·25 전쟁이 났다. 피난길에 전형필은 다른 재산을 다 두고 해례본만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겼다.

낮에는 품에 안고 걸었고, 밤에는 베개 밑에 두고 잤다. 집도 그림도 잃을 수 있어도 해례본만은 아니었다.

왜 하필 해례본 한 권이었나. 1940년 안동에서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몰랐다. 창문 살을 본떴다는 둥, 옛 글자를 베꼈다는 둥 말만 무성했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ㅁ은 입 모양을 본떴다.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

해례본에는 자음이 사람의 입과 혀와 목구멍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설계 원리가 적혀 있었다. 한글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세상에 그 한 권만이 알고 있었다. 집 열 채 값이 아까울 리 없었다.

CH. 5

해례본은 국보가 되었다

지금, 국보 제70호

전형필이 지킨 해례본은 지금 국보 제70호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천 원짜리로 팔릴 뻔한 책이, 한글의 설계도를 담은 세상에 하나뿐인 원본이었다.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아는 건, 부른 값의 열 배를 낸 한 사람 덕분이다.

— 끝 —
카톡 한 줄

한글 자음이 입과 혀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걸 우리가 아는 건, 전형필이 집 열 채 값을 주고 산 책 한 권 덕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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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8)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