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을 마신 분서장
1923년 9월 3일, 요코하마 츠루미. 분서장이 그 병을 받아 마셨다.
츠루미 분서 앞에 1,000명
1923년 9월 3일, 요코하마 츠루미
지진이 난 지 사흘째였다.
한 경찰 분서 앞에 자경단이 모였다. 죽창과 일본도를 들고.
분서장이 문 앞에 섰다. 경찰관 서른 명이 뒤에 있었다.
1923년 9월 1일, 도쿄가 흔들렸다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요코하마 일대가 흔들렸다. 진도 7.9. 도시가 무너지고, 불이 났다.
다음 날 새벽부터 거리에 한 줄짜리 소문이 돌았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자경단이 결성됐다. 길목마다 사람을 세웠다. 일본어를 시켜 보고, 발음이 어긋나면 길목에서 죽임을 당했다.
오카와가 자경단의 병을 받았다
분서장 오카와 츠네키치 (大川常吉)
9월 3일 오후. 자경단 1,000명이 츠루미 분서로 몰려왔다. 안에 숨겨 놓은 조선인·중국인 약 300명을 내놓으라고 했다.
자경단은 작은 병 하나를 가지고 왔다. '독이 든 병'이라고 했다. 조선인이 가지고 있던 거라고.
오카와가 자경단의 병을 받아, 마셨다.
오카와가 자경단을 향해 등을 보였다. 1923년 9월 3일, 츠루미 분서에서 단 한 사람도 끌려나가지 않았다.
오카와는 정년 전에 그만뒀다
1923년 이후
오카와는 1940년에 죽었다. 1923년 9월 3일을 자기 입으로 자세히 말한 적은 거의 없다.
한참 뒤, 한 신문에 오카와의 손자가 짧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정년 전에 경찰을 그만뒀다. 조선인을 감쌌던 일이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오카와의 비석을 찾는 사람들
요코하마 츠루미구, 동점사
절 마당에 작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오카와 츠네키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국과 일본의 사람들이 오카와의 비석을 찾는다.
1923년 9월 3일, 츠루미 분서에 모였던 조선인 300명은 한 명도 끌려나가지 않았다.
1923년 조선인 300명이 살아남은 건, 한 분서장이 자경단이 가져온 그 병을 직접 마셔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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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5)
- 大川常吉 — Wikipedia (日本語)
- Kantō Massacre — Wikipedia (English)
- 간토 대학살 — 위키백과
- 人命の尊さ守った男 鶴見署長・大川常吉 — タウンニュース 2013-08-29
- 虐殺から朝鮮人300人を救った警察署長 — 時事ドットコム (2023, 関東大震災100年)
- 関東大震災100年 虐殺から朝鮮人守った故大川署長 — 東京新聞
- 朝鮮人虐殺 大川署長の精神はいま — 神奈川新聞 (カナロコ)
- 関東大震災のちょっといい話 大川常吉 — 防災システム研究所 山村武彦
- 관동대학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 1923 —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 Great Kantō Earthquake — Wikipedia (English) [11:58:32 JST, M7.9~8.0]
- 東漸寺 (横浜市鶴見区) — Wikipedia
- 横浜市鶴見区 東漸寺の故大川常吉氏の碑 — 地震防災 (碑文写真記録)
- 오카와 츠네키치 — 나무위키
- 조선인 보호한 일본 경찰, 그가 남긴 메시지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