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기업· 공유받은 글

박카스는 두 번 망했다

1961년 9월, 서울 약국 진열대에서 박카스가 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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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동아제약이 약국 진열대에 깐 첫 박카스

1961년 9월, 서울 약국 진열대

동아제약이 1961년 9월 박카스를 약국에 깔았다. 액체가 아니라 알약이었다.

박카스 1세대 (1961)
당의정
간장 보호 — 종합영양제. 설탕 코팅 알약.

당의정은 진열대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설탕 코팅이 더위에 녹아 약이 서로 들러붙었다.

CH. 2

한국전쟁이 끝난 지 8년이었다

1961년 한국

한국전쟁이 끝나고 8년이 지났다. 가난이 길게 남아 있었다.

약국에는 자양강장제가 줄지어 섰다. 비타민, 강장 정제, 보혈제.

전쟁이 끝난 뒤
8
1953 → 1961. 한국 1인당 GDP는 약 80달러였다.

동아제약은 박카스를 그 진열대에 끼워 넣으려 했다. 첫 시도가 알약이었다.

CH. 3

박카스가 두 번 망했다

1961년 — 1차 실패

알약은 진열대 위에서 녹아 들러붙었다. 동아제약은 박카스 1세대를 대량 반품으로 거뒀다.

1962년 8월 — 2차 실패

동아제약은 박카스를 20cc 앰플로 다시 만들었다. 유리병이 운반 중 잇따라 깨졌다.

1963년 8월 8일 — 3차 시도

박카스 3세대
드링크
갈색 유리병 100ml. 'D'는 Drink의 D.

박카스-D는 살아남았다. 두 번 망한 자리에서 세 번째가 일어섰다.

CH. 4

강신호가 함부르크에서 본 신상

강신호 (1927–2023)

강신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강신호는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 입구에서 한 신상을 봤다. 술과 추수의 신, 바쿠스.

약 이름에 술의 신을 붙였다.
강신호 회장 회고 (의학신문)

강신호는 1959년 동아제약에 입사했다. 1961년 첫 박카스 알약에 바쿠스의 이름을 붙였다.

CH. 5

60년 뒤, 226억 병

박카스의 60년

박카스는 1965년 980만 병, 1968년 7,006만 병이 팔렸다.

누적 판매 (2022년 기준)
약 226억
12cm 병을 세우면 지구 둘레의 약 68바퀴. (동아제약 발표)

박카스는 1961년 9월 약국에서 녹던 알약에서 출발했다.

— 끝 —
카톡 한 줄

박카스, 알고 보면 두 번 망한 뒤 살아남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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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