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교환대 앞 열여덟
1938년 창덕궁 교환대. 18세 홍정순이 헤드셋을 끼었다. 같은 황실 안에 61세 의친왕 이강이 있었다.
1938년 창덕궁, 열여덟이 헤드셋을 끼었다
1938년, 창덕궁. 18세 홍정순이 교환대 앞에 앉아 헤드셋을 끼었다.
이름은 홍정순. 1920년생. 코드를 꽂아 두 통화를 잇는 일이 직업이었다.
창덕궁 교환대 너머에서, 누군가가 18세의 홍정순을 알게 됐다. 1938년에 61세이던 의친왕 이강이었다.
1902년 한성, 헤드셋이 처음 왔다
1902년 6월, 한성. 한국에서 처음 시내전화 교환업무가 시작됐다.
두 통화 사이에 코드를 꽂아 잇는 사람을 한국 전화국은 교환수라 불렀다.
처음 한국 교환수는 대부분 남자였다. 상투를 튼 사내들이 손님과 자주 부딪쳤다.
1920년대부터 교환수 자리에 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채용 광고는 경성 우체국이 냈다.
여자 교환수 채용 조건은 셋이었다. 보통학교 졸업, 명랑한 목소리, 그리고 키 4척 7촌 — 약 141cm. 교환대에 손이 닿게 한 조건이었다.
1938년, 홍정순이 의친왕의 측실이 됐다
1920년, 홍정순이 남양 홍씨 집안에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1938년, 홍정순이 창덕궁에서 전화교환수로 일했다. 헤드셋을 끼고 코드를 꽂는 자리였다.
1938년의 옛 황실 사람들은 일제 총독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의친왕 이강이 있었다.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 1938년에 61세였다.
1938년, 의친왕 이강이 18세 홍정순을 측실로 들였다. 의친왕의 마지막 시기 측실이었다.
이후 네 자녀가 태어났다. 이석은 1941년, 이용은 1944년, 이정은 1947년, 이현은 1950년에.
1971년, 자동식이 개통됐다
1971년. 한국에 자동식 전화가 개통됐다.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걸 수 있게 됐다. 교환수의 손을 거치지 않는 통화가 시작됐다.
1902년 한성전화소에서 시작된 한국 전화교환수의 일이 69년 만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1971년에 홍정순도 51세로 죽었다. 신경성 위암이었다.
1971년에 자동화가 시작됐다
1902년 한성에서 시작된 한국 전화교환수의 일은 1971년에 자동화가 시작되기까지 69년이 걸렸다.
처음 코드를 꽂은 사람은 대부분 상투를 튼 남자였다. 1920년대부터 어린 여자들이 헤드셋을 끼고 교환대에 앉기 시작했다.
1920년에 태어난 홍정순은 18세에 창덕궁 교환대 앞에 앉아 의친왕 이강을 만났다. 1938년이었다.
한국 전화교환수의 일이 사라지기 시작한 1971년에, 홍정순도 51세로 떠났다.
한국 전화교환수의 일이 사라지기 시작한 1971년에, 1938년 의친왕 이강의 측실이 됐던 교환수 홍정순도 51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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