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 이름은 발음 실수였다
1971년 12월 서울. 롯데공업이 새 과자를 깔았다. 이름은 사장 네 살 딸의 발음 실수였다.
롯데공업이 일본 과자를 뜯었다
1971년 12월, 서울. 한 봉지가 진열대에 올라갔다.
그 봉지를 만드느라 한 회사가 1년을 썼다. 이름은 새우깡이었고, 한국에 그런 과자는 그 전까지 없었다.
1971년 새우깡 한 봉지의 뒤에는 1년의 분해 작업이 있었다. 분해 대상은 일본 과자였다.
신춘호가 일본 롯데를 떠났다
1965년 봄. 신춘호가 서울에 회사를 차렸다.
1965년 봄, 신춘호가 일본 롯데를 나와 서울에 롯데공업을 세웠다. 1963년 삼양라면이 한국에 첫 라면을 깔았을 때, 신춘호는 형 신격호에게 라면 사업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뒤였다.
형과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신춘호가 고른 길은 라면이 아니라 과자였다.
신춘호가 갓파에비센을 뜯었다
1970년. 신춘호가 결정 하나를 내렸다.
1970년, 신춘호의 결정은 단순했다. 일본 칼비의 새우 과자 갓파에비센을 뜯어 분석하기. 회사 전체가 1년 동안 매달렸다.
수백 번 시행착오 끝에 롯데공업이 찾은 방법은 가열한 소금의 열로 반죽을 굽는 방식이었다. 기름에 튀기지 않으니 기름지지 않고 바삭했다.
1971년 가을, 과자가 완성됐다. 그런데 한 가지가 비어 있었다. 이름이었다.
회의실에서 이름이 안 나왔다
1971년 가을. 작명 회의가 막혔다.
1971년 가을, 작명 회의에서 후보가 줄줄이 깔렸다. '새우스낵', '새우튀밥', '새우뻥'. 다 어색했다.
회의가 막혀 있던 즈음, 신춘호의 막내딸 신윤경이 민요 아리랑을 잘못 말했다. 신윤경은 네 살이었다. 한 글자가 어긋났다.
“아리깡”
신춘호가 딸의 발음을 듣고 새우깡으로 정했다. 1년 동안의 분해 작업이 끝난 자리에 들어선 이름이 네 살 아이의 발음 실수였다.
롯데공업 매출이 3개월에 3.5배
1972년 봄. 매출이 350% 늘었다.
1971년 12월 출시 3개월 뒤, 롯데공업 전체 매출이 350% 늘었다. 첫해 20만 6000박스가 1972년에는 425만 박스로 늘었다.
2021년 새우깡 누적 판매량이 83억 봉을 넘었다. 1978년 롯데공업이 농심으로 사명을 바꾼 뒤에도 새우깡 봉지의 이름은 50년 동안 한 글자도 안 바뀌었다.
한국 첫 스낵 새우깡 이름, 사장 네 살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이라 잘못 발음한 데서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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