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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한국 인물· 공유받은 글

이중섭은 가족을 은박지에 새겼다

1952년 부산,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가족을 새겼다. 종이 살 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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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이중섭이 가족을 은박지에 새겼다

1952년 부산. 이중섭이 담뱃갑 속 은박지를 폈다.

종이도 캔버스도 살 돈이 없었다. 이중섭은 못이나 송곳으로 은박지를 긁어 그림을 새겼다. 긁힌 자리에 물감을 발랐다가 닦아내면, 파인 선만 남았다.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새긴 그림
약 300
이중섭이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섭이 은박지에 새긴 건 거의 늘 같은 장면이었다. 벌거벗은 아이 둘, 아내, 그리고 이중섭. 네 식구가 뒤엉켜 노는 그림이었다. 정작 1952년 부산의 이중섭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CH. 2

이중섭은 도쿄에서 마사코를 만났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이중섭은 도쿄로 그림을 배우러 갔다. 같은 미술학교에서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다. 이중섭과 마사코는 1945년 원산에서 결혼했다. 마사코는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았다.

전쟁이 터졌다. 1951년, 이중섭은 가족을 데리고 제주 서귀포로 피란했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 끼니를 이었다. 가난했지만 네 식구가 함께였다.

1951년 서귀포
단칸방 네 식구
지금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CH. 3

이중섭이 가족을 일본으로 보냈다

1952년 여름, 부산. 이중섭이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행 배에 태웠다.

전쟁 통에 네 식구가 함께 굶고 있었다. 마사코와 둘째 아이의 건강도 나빠져 있었다. 이중섭은 가족만이라도 살리려고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보냈다. 돈을 모아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

이중섭은 부산과 통영을 떠돌며 그림을 팔려 했다. 1953년, 선원증을 구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마사코와 두 아들을 만나 며칠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중섭이 일본의 가족을 다시 만난 횟수
단 한 번
1953년, 며칠뿐이었다
CH. 4

은박지 가족이 뉴욕으로 갔다

한국에 남은 이중섭은 그림이 팔리기를 기다렸다.

1955년, 이중섭은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값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종이와 물감을 살 형편이 못 됐다. 이중섭은 담뱃갑에서 벗긴 은박지에 계속 가족을 새겼다. 일본으로 보낸 마사코와 두 아들이었다.

1955년, 미국인 아서 맥타가트가 개인전에서 은지화 석 점을 샀다. 맥타가트는 한국에서 문화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듬해, 맥타가트는 은지화 석 점을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새긴 가족 그림이, 한국 그림으로는 처음 뉴욕 현대미술관에 들어갔다. 종이 살 돈이 없어 새긴 그림이었다.

CH. 5

이중섭은 가족을 다시 못 만났다

1956년 9월 6일, 서울적십자병원. 이중섭이 혼자 숨을 거뒀다.

이중섭은 마흔이었다. 곁을 지키는 가족은 없었다. 병원은 이중섭을 연고 없는 환자로 적어 두었다. 친구들은 며칠 뒤에야 이중섭이 죽은 것을 알았다.

일본으로 보낸 마사코와 두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네 식구가 함께 산 시간은 서귀포의 한 해와, 1953년 도쿄의 며칠이 거의 전부였다.

이중섭이 마지막까지 가장 많이 그린 건 곁에 없는 가족이었다. 종이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새긴 가족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 끝 —
카톡 한 줄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가족을 새긴 건 종이 살 돈이 없어서였는데, 은지화 석 점이 한국 그림으로는 처음 뉴욕 현대미술관에 들어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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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5)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