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박지에 긁은 가족이 뉴욕에 갔다
1950년대 부산. 화가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가족을 긁었다. 종이 살 돈이 없었다.
이중섭이 담뱃갑을 폈다
1950년대 부산. 화가 이중섭이 다 피운 담뱃갑을 폈다.
이중섭은 담뱃갑 안에 든 은박지를 펴서, 못으로 그림을 긁었다. 종이도 물감도 넉넉히 살 돈이 없던 때였다. 긁어낸 홈에 물감을 문질러 넣고 닦아내면 가느다란 선이 남았다.
이중섭이 손바닥만 한 은박지에 되풀이해 긁은 건 가족이었다. 네 식구가 한데 뒤엉켜 노는 장면이었다.
마사코가 현해탄을 건넜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이중섭은 일본 도쿄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다닌 학교에서 후배로 들어온 일본 여학생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마사코가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원산으로 왔다. 두 사람은 원산에서 혼례를 올렸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이중섭이 가족을 일본에 보냈다
1950년 겨울. 전쟁이 원산까지 닥쳤다.
이중섭은 첫아들을 일찍 잃고, 두 아들 태현과 태성을 키웠다. 1950년 12월, 가족은 원산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했다. 부산과 제주를 거치는 동안 네 식구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1952년, 이중섭은 굶는 가족을 일본의 처가로 떠나보냈다. 아내 이남덕과 두 아들이 배를 탔다. 이중섭은 부산에 남았다.
그림 석 점이 뉴욕에 닿았다
1953년, 이중섭이 일본행 배에 올랐다.
이중섭은 친구의 도움으로 어렵게 선원증을 구했다. 선원증으로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가족과 보낸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이중섭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돌아온 뒤,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늘 그림이 들어 있었다. 담뱃갑 은박지에 긁은 그림도 함께였다. 긁어 그린 그림은 자주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장면이었다.
1955년, 이중섭이 전시를 열었다. 은박지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한국에 와 있던 미국인 아더 맥타가트가 은박지 그림 석 점을 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들어간 석 점 가운데 하나의 제목은 '낙원의 가족'이었다.
이중섭이 홀로 눈을 감았다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
이중섭이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염이었다. 아내 이남덕과 두 아들은 일본에 있었다. 이중섭은 무연고 환자로 눈을 감았고, 친구들은 뒤늦게 부고를 들었다.
종이가 없어 담뱃갑에 긁은 가족 그림은, 이중섭이 끝내 돌아가지 못한 가족이었다. 이중섭이 떠난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못으로 긁은 가족은 뉴욕과 서울의 미술관에 남아 있다.
종이 살 돈도 없던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긁은 가족 그림 석 점이, 지금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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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2)
- 위키백과 — 이중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중섭
- 영남일보 — 뉴욕 현대미술관: 이중섭의 은지화 (박재열 칼럼)
- 아주경제 — 가난이 만든 이중섭 '은지화', 어떻게 미국 모마미술관에 소장됐을까
- 경향신문 — 이중섭의 '소중한 남덕' 야마모토 여사 별세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 물고기와 아이들 (은지화)
- 나무위키 — 이중섭 (생애·은지화·선원증 경위·사망 정황 교차검증)
- 경향신문 — 이중섭 부인 이남덕씨, 101세로 별세 (2022)
-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 이중섭미술관: 일본인 아내와의 인연 (1936 문화학원 인연, 1945 원산 결혼)
- 아시아엔(The AsiaN) — 무연고자로 홍제동 화장터 거쳐 망우리 안장 (사망 정황)
- 제주의소리 — 화공 이중섭의 삶과 예술 응축한 은지화 (제작 ~300점·현존 ~90점, MoMA 3점)
- NYCultureBeat — 이중섭의 담뱃갑 은지화는 어떻게 MoMA로 들어갔나? (맥타가트 주한 미재무관, 1955.1 미도파 개인전, MoMA 3점 영문 제목 Fairyland/Family in Paradise/People Reading the Newspaper, 1956 첫 한인 소장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