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인물· 공유받은 글

은박지에 긁은 가족이 뉴욕에 갔다

1950년대 부산. 화가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가족을 긁었다. 종이 살 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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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이중섭이 담뱃갑을 폈다

1950년대 부산. 화가 이중섭이 다 피운 담뱃갑을 폈다.

이중섭은 담뱃갑 안에 든 은박지를 펴서, 못으로 그림을 긁었다. 종이도 물감도 넉넉히 살 돈이 없던 때였다. 긁어낸 홈에 물감을 문질러 넣고 닦아내면 가느다란 선이 남았다.

이중섭이 평생 은박지에 그린 그림
약 300
종이 대신 담뱃갑 은박지가 화첩이었다

이중섭이 손바닥만 한 은박지에 되풀이해 긁은 건 가족이었다. 네 식구가 한데 뒤엉켜 노는 장면이었다.

CH. 2

마사코가 현해탄을 건넜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이중섭은 일본 도쿄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다닌 학교에서 후배로 들어온 일본 여학생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마사코가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원산으로 왔다. 두 사람은 원산에서 혼례를 올렸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일본에서
야마모토 마사코
원산에서
이남덕
CH. 3

이중섭이 가족을 일본에 보냈다

1950년 겨울. 전쟁이 원산까지 닥쳤다.

이중섭은 첫아들을 일찍 잃고, 두 아들 태현과 태성을 키웠다. 1950년 12월, 가족은 원산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했다. 부산과 제주를 거치는 동안 네 식구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이중섭과 가족이 함께 산 시간
약 7
1945년 원산에서 결혼, 1952년 이별

1952년, 이중섭은 굶는 가족을 일본의 처가로 떠나보냈다. 아내 이남덕과 두 아들이 배를 탔다. 이중섭은 부산에 남았다.

CH. 4

그림 석 점이 뉴욕에 닿았다

1953년, 이중섭이 일본행 배에 올랐다.

이중섭은 친구의 도움으로 어렵게 선원증을 구했다. 선원증으로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가족과 보낸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이중섭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돌아온 뒤,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늘 그림이 들어 있었다. 담뱃갑 은박지에 긁은 그림도 함께였다. 긁어 그린 그림은 자주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장면이었다.

1955년, 이중섭이 전시를 열었다. 은박지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한국에 와 있던 미국인 아더 맥타가트가 은박지 그림 석 점을 샀다.

1950년대, 부산
담뱃갑 은박지
지금,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뉴욕 현대미술관에 들어간 석 점 가운데 하나의 제목은 '낙원의 가족'이었다.

CH. 5

이중섭이 홀로 눈을 감았다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

이중섭이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염이었다. 아내 이남덕과 두 아들은 일본에 있었다. 이중섭은 무연고 환자로 눈을 감았고, 친구들은 뒤늦게 부고를 들었다.

이중섭이 떠난 뒤 이남덕이 더 산 시간
66
이남덕은 2022년 101세로 별세했다

종이가 없어 담뱃갑에 긁은 가족 그림은, 이중섭이 끝내 돌아가지 못한 가족이었다. 이중섭이 떠난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못으로 긁은 가족은 뉴욕과 서울의 미술관에 남아 있다.

— 끝 —
카톡 한 줄

종이 살 돈도 없던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긁은 가족 그림 석 점이, 지금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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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2)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