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는 22일을 같은 자리에 앉았다
1992년 5월 28일 새벽, 사라예보. 그가 정장 차림으로 폭격 자리에 의자를 놓았다. 22일 동안 매일.
정장의 첼리스트가 폐허에 앉았다
CH. 1
1992년 5월 28일 새벽, 사라예보 중심가. 그가 검은 정장과 흰 나비넥타이를 입고, 의자와 첼로를 들고 폐허로 걸어 들어갔다.
사라예보 오페라의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35세. 22일이라는 숫자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라예보가 1992년 4월에 갇혔다
CH. 2
1992년 4월 5일, 사라예보가 포위됐다. 보스니아 전쟁이 시작된 날이었다. 도시 안으로 식량도 약도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포위 두 달째, 사라예보 오페라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도시 안에 남았다. 부서진 도서관 안에서, 폐허가 된 카페 안에서, 친구들과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5월 27일, 빵 줄에 박격포가 떨어졌다
CH. 3
1992년 5월 27일 오전, 사라예보 중심가 바세 미스키나 거리.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 위로 박격포 세 발이 떨어졌다.
베드란이 사는 아파트는 바세 미스키나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베드란은 옷장에서 검은 정장과 흰 나비넥타이를 꺼내 입었다. 사라예보 오페라 무대에 오를 때 입던 정장이었다.
베드란은 첼로와 의자를 들고 폭격 자국이 남은 자리로 걸어 나갔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알비노니가 아니었다
CH. 4
베드란이 22일 동안 켠 곡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였다. 1700년대 베네치아 작곡가 토마소 알비노니의 곡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알비노니의 곡이 아니다. 1958년 이탈리아 음악학자 레모 자초토가 작곡한 곡이다.
자초토는 폐허가 된 드레스덴 도서관에서 알비노니의 미완성 단편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단편의 실제 존재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 후일 자초토는 곡 전체를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했다.
1958년에 만들어진 위작 진혼곡이, 30년 뒤 사라예보 폐허에서 22일 동안 연주됐다.
베드란은 매일 다른 시각에 나갔다
CH. 5
22일 동안 베드란이 같은 자리에 나간 시각은 매일 달랐다. 저격수가 같은 시각을 노릴 수 없게 한 것이었다.
베드란은 1993년 사라예보를 떠나 북아일랜드 워런포인트에 정착했다. 워런포인트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베드란은 22일이 22명을 위한 시간이라 했다.
사라예보 첼리스트가 22일 켠 곡이, 알비노니가 아니라 1958년에 만들어진 위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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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
- Wikipedia — Vedran Smailović
- Wikipedia — Adagio in G minor (Albinoni/Giazotto)
- Wikipedia — Siege of Sarajevo
- Wikipedia — Sarajevo bread line massacre
- Wikipedia — Siege of Leningrad
- Britannica — Adagio in G Minor
- CBC Music — Is Albinoni's Adagio the biggest fraud in music history?
- Sarajevo Times — 31 years ago, 26 Bosnians killed in bread line
- World Tribune — The Cellist of Saraje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