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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한국 기업· 공유받은 글

조지아 호텔의 한 입이 멀리 갔다

1973년 어느 날, 미국 조지아 호텔. 동양제과 김용찬이 한 입 먹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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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제과가 50원짜리 과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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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한국 동양제과가 한 과자를 냈다. 한 봉지 50원이었다. 시작은 한 해 전, 미국 조지아주의 한 호텔이었다.

한 봉지 출시가
50
1974년 4월 출시, 시작점은 1973년 미국 조지아주 호텔의 한 입

초코파이였다. 1973년의 한 입이 한국을 거쳐 어디까지 갔는지, 1974년의 동양제과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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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찬이 조지아 호텔에서 한 입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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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미국 조지아주 한 호텔의 카페. 동양제과 과자개발팀장 김용찬이 미국 출장 길에 자리를 잡았다. 김용찬에게 나온 과자는 비스킷 두 장 사이에 마시멜로가 끼어 있었고, 초콜릿이 겉을 감싸고 있었다.

비슷한 형식의 미국 과자가 56년 전에 이미 있었다. 1917년 테네시주에서 출시된 문파이였다. 비스킷·마시멜로·초콜릿의 조합은 미국 남부에서 광부 간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17년 미국
문파이 — 비스킷·마시멜로·초콜릿
1973년 한국
동양제과의 같은 형식 과자 없음

김용찬은 한 입 먹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김용찬은 동양제과 연구실에서 같은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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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찬이 1년 동안 비스킷을 시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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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1974년 봄까지, 김용찬은 동양제과 연구실에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비스킷이 단단하면 마시멜로와 어울리지 않고, 마시멜로가 무르면 비스킷이 부서졌다.

출시까지 걸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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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두께·수분, 마시멜로 점도, 초콜릿 코팅까지 조정

김용찬이 마지막으로 잡은 건 비스킷의 촉촉함이었다. 비스킷이 마시멜로의 습기를 천천히 흡수해,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지는 구조였다. 단단한 비스킷이 출고 며칠 뒤 카페 디저트처럼 변했다.

1974년 4월, 동양제과가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한 봉지 5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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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가 개성공단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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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50원으로 시작한 초코파이는 1976년 100원이 됐다. 100원이 다시 20년 동안 그대로 갔다. 1996년에야 다음 인상이 있었다.

한국 시장에서 초코파이가 안 먹은 사람을 찾기 어려운 과자가 됐다. 동양제과는 오리온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러시아·베트남으로 나갔다. 그러나 1973년 김용찬의 한 입이 가장 멀리 닿은 곳은 따로 있었다.

개성공단 일일 지급 개수
약 40만
근로자 약 5만 2천 명에게 간식으로 지급, 2010년대 중반 기준

2006년부터 한국 기업이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나눠줬다. 일일 40여만 개였다.

북한 근로자들은 초코파이를 받아 안 먹었다. 가지고 나가 장마당에서 팔았다. 초코파이가 북한 장마당 인기 상품 1순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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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자체 초코파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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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북한이 개성공단에 자체 과자를 보냈다. 이름은 쵸콜레트단설기였다. 북한이 직접 만든 초코파이였다. 한국 기업의 초코파이 지급을 북한 당국이 막은 결과였다.

1973년 미국 조지아 호텔
김용찬이 한 입
2015년 북한 개성공단
쵸콜레트단설기 등장

1973년 김용찬의 한 입이 1974년 한국에서 50원짜리 봉지가 되고, 2010년대 북한 장마당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외국 과자가 되고, 2015년 북한이 자체 복제판을 만들게 했다.

— 끝 —
카톡 한 줄

초코파이는 1973년 미국 조지아 호텔에서 시작했지만, 가장 멀리 간 곳은 북한 장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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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