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세계사 한국인 모름· 공유받은 글

장벽을 연 남자는 자기가 아니라고 했다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한 남자가 28년 동안 지킨 장벽의 문을 명령 없이 열었다.

↓ 스크롤
CH. 1

예거가 명령 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한 남자가 검문소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위에서는 아무 답도 오지 않았다.

문 밖에는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검문소 경비병들의 손에는 총이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하랄트 예거. 보른홀머 검문소에서 여권 검문을 책임진 국경수비대 장교였다.

장벽을 연 건 내가 아니다. 검문소 앞에 모인 동독 사람들이 열었다.
하랄트 예거, 2014년 회고
CH. 2

예거가 28년 동안 장벽을 지켰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

1961년, 동독은 베를린 한가운데에 장벽을 세웠다. 동과 서를 가르는 콘크리트 벽이었다.

장벽이 세워지던 1961년, 예거도 국경수비대 제복을 입었다. 장벽과 예거가 같은 해에 시작했다.

장벽은 28년 동안 서 있었다. 장벽을 넘어 서쪽으로 달아나려다 죽은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

예거가 28년간 한 일
장벽을 지키는 것
1989년 11월 9일 밤 예거가 한 일
장벽을 여는 것

예거는 28년을 명령대로 일했다. 명령이 곧 일이었고, 예거에게 명령 없는 밤은 없었다.

CH. 3

예거가 바리케이드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6시

예거는 검문소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화면에서 동독 정부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서독 여행 자유화를 발표했다. 한 기자가 언제부터 시행되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지체 없이.
귄터 샤보브스키,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

예거는 사레가 들렸다. 발표된 규정은 아직 시행될 것이 아니었다. 위에서 예거에게 내려온 명령은 없었다.

밤이 깊을수록 검문소 앞 사람들이 불어났다. 수천 명이 문을 열라고 외쳤다. 예거는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없다. 너에게 줄 지시도 없다.
예거가 통화한 상관

밤 11시 30분, 예거는 스스로 정했다. 더 기다리면 군중 속에서, 또 부하들 사이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보았다.

바리케이드를 올려라.
하랄트 예거, 1989년 11월 9일 밤 11시 30분
CH. 4

위에서 내린 명령은 문을 열라는 게 아니었다

다시, 11시 30분 전의 검문소

사실 위에서 예거에게 내린 명령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라는 명령은 아니었다.

명령은 이른바 '밸브 해법'이었다. 가장 시끄럽게 구는 몇 명만 골라 서쪽으로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압력을 조금 빼서 나머지는 돌려보내려는 계산이었다.

결과는 반대였다. 몇 명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본 군중은 오히려 더 불어났다.

그래서 예거가 명령 없이 문 전체를 열었다. 위에서 시킨 건 틈 하나였고, 예거가 연 건 장벽이었다.

예거는 평생 '장벽을 연 건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거는 군중이 밀어 올린 문을 더 막는 시늉만 그만뒀다고 보았다.

CH. 5

예거가 끝까지 공을 시민에게 돌렸다

1997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예거는 직장을 잃었다. 1997년, 예거는 아내와 함께 작은 신문 가판대를 열었다.

보른홀머 검문소는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에서 가장 먼저 열린 문이었다. 자정을 조금 넘겨 나머지 검문소도 모두 따라 열었다.

28년 동안 장벽 앞에서 죽은 사람은 100명을 넘었다. 장벽이 열리던 밤, 보른홀머에서는 총성 한 발 없었다.

베를린 장벽을 처음 연 사람은 망치를 든 군중이 아니었다. 명령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국경수비대 한 명, 하랄트 예거였다. 예거는 끝까지 공을 시민들에게 돌렸다.

— 끝 —
카톡 한 줄

베를린 장벽을 처음 연 건 망치도 군중도 아니라, 명령 한 줄 없이 검문소 바리케이드를 들어올린 동독 국경수비대 한 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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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1)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