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자전거에서 내렸다
1980년 새벽 거리, 신문 돌리던 배달원 열에 여덟이 미성년이었다. 10년 뒤, 그 안장이 비었다.
배달원 열에 여덟이 학생이었다
1980년, 새벽 거리
1980년 새벽, 전국에서 신문을 돌린 배달원은 7만 3천여 명이었다.
안장에 앉은 열에 여덟이 학생이었다. 십 년 뒤, 안장에서 학생이 사라졌다.
소년이 학비를 벌러 새벽에 나섰다
가난한 집 소년의 일
1980년 전후, 신문배달은 가난한 집 소년이 학비를 버는 일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자전거 짐받이에 신문을 싣고 골목을 돌았다. 학교는 신문을 다 돌린 다음이었다.
1980년, 배달원 중 가장 많은 쪽은 중학생이었다. 100명 중 43명꼴이었다.
신문이 서너 배 무거워졌다
1987년 6월 29일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이 나왔다. 언론을 묶어 두던 법이 풀렸다.
이듬해부터 신문사들이 지면을 늘렸다. 올림픽 특수로 광고가 몰렸고, 신문끼리 두께로 경쟁했다.
신문 한 부 무게가 서너 배로 불었다. 자전거 짐받이가 학생이 감당할 무게를 넘어섰다.
증면이 시작된 1980년대 말,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입시 경쟁이 빡빡해졌다. 가난한 집 소년도 새벽 대신 책상에 앉아야 낙오하지 않는 시대였다.
1990년 무렵, 학생들이 새벽 안장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빈 안장을 주부와 노인이 채웠다
빈 안장을 채운 사람들
학생이 떠난 새벽 안장은 오래 비어 있지 않았다.
먼저 30~40대 주부가 올랐다. 1990년대 초 신문배달 월수입은 20~25만원, 주부들은 아이 학원비와 생활비에 보탰다.
소년들이 책상에 매달려야 하는 시대가 오는 사이 신문은 소년이 들기엔 무거워졌고, 빈 안장의 무게는 주부와 노인이 대신 졌다.
새벽 자전거가 거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가벼워진 신문
2010년대 들어 증면경쟁이 끝났다. 신문은 다시 32면 안팎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은 종이 대신 화면으로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세대의 가난한 소년을 학교에 보냈던 새벽 자전거는, 신문이 무거워지고 다시 가벼워지는 사이에 거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새벽 자전거 주인이 소년에서 노인으로 바뀐 건, 소년들이 공부에 매달리는 사이 신문이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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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으로 보기📖 블로그에서 자세히 읽기출처 (6)
- 나무위키 —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 (배달원 7만 3천 명·미성년 80%·중학생 42.6%·월수입·세대교체·증면 무게부담)
- 나무위키 — 신문 (증면경쟁: 1987년 12면→1990년대 30~50면, 무게 3~4배, 2010년대 32면)
- 미디어리터러시(다독다독) — 신문 배달의 세대교체: 10대 고학생→30~40대 주부→60대 노인, 윤상길 교수 통계, 학생 이탈 원인=소득 향상·교육열·입시경쟁
-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언론 (1987 6·29 선언, 언론기본법 폐기, 1988년 16면 증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광고 (6·29 후 언론·광고 개방, 1988년 16면→1990년 24면→90년대 중반 40면+ 증면, 광고비 급증)
- 윤상길, 「박정희 정권 시기 신문배달원 신화 창출의 사회적 맥락」 (서울대 S-Space, 학술 1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