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사라진 풍습· 공유받은 글

소년이 자전거에서 내렸다

1980년 새벽 거리, 신문 돌리던 배달원 열에 여덟이 미성년이었다. 10년 뒤, 그 안장이 비었다.

↓ 스크롤
CH. 1

배달원 열에 여덟이 학생이었다

1980년, 새벽 거리

1980년 새벽, 전국에서 신문을 돌린 배달원은 7만 3천여 명이었다.

그중 미성년 비율
80%
고교생 이하. 중학생만 42.6%였다.

안장에 앉은 열에 여덟이 학생이었다. 십 년 뒤, 안장에서 학생이 사라졌다.

CH. 2

소년이 학비를 벌러 새벽에 나섰다

가난한 집 소년의 일

1980년 전후, 신문배달은 가난한 집 소년이 학비를 버는 일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자전거 짐받이에 신문을 싣고 골목을 돌았다. 학교는 신문을 다 돌린 다음이었다.

신문배달 월수입(1980년대)
10~15만원
근무시간이 짧아 학생에게 인기였다.

1980년, 배달원 중 가장 많은 쪽은 중학생이었다. 100명 중 43명꼴이었다.

CH. 3

신문이 서너 배 무거워졌다

1987년 6월 29일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이 나왔다. 언론을 묶어 두던 법이 풀렸다.

이듬해부터 신문사들이 지면을 늘렸다. 올림픽 특수로 광고가 몰렸고, 신문끼리 두께로 경쟁했다.

1987년
12면
1990년대
30~50면

신문 한 부 무게가 서너 배로 불었다. 자전거 짐받이가 학생이 감당할 무게를 넘어섰다.

증면이 시작된 1980년대 말,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입시 경쟁이 빡빡해졌다. 가난한 집 소년도 새벽 대신 책상에 앉아야 낙오하지 않는 시대였다.

1990년 무렵, 학생들이 새벽 안장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CH. 4

빈 안장을 주부와 노인이 채웠다

빈 안장을 채운 사람들

학생이 떠난 새벽 안장은 오래 비어 있지 않았다.

먼저 30~40대 주부가 올랐다. 1990년대 초 신문배달 월수입은 20~25만원, 주부들은 아이 학원비와 생활비에 보탰다.

1980년새벽 안장의 주인은 중학생이었다
1990년대30~40대 주부가 올랐다
2000년대 이후60대 노인이 빈 안장을 채웠다

소년들이 책상에 매달려야 하는 시대가 오는 사이 신문은 소년이 들기엔 무거워졌고, 빈 안장의 무게는 주부와 노인이 대신 졌다.

CH. 5

새벽 자전거가 거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가벼워진 신문

2010년대 들어 증면경쟁이 끝났다. 신문은 다시 32면 안팎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은 종이 대신 화면으로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세대의 가난한 소년을 학교에 보냈던 새벽 자전거는, 신문이 무거워지고 다시 가벼워지는 사이에 거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 끝 —
카톡 한 줄

새벽 자전거 주인이 소년에서 노인으로 바뀐 건, 소년들이 공부에 매달리는 사이 신문이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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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