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러 소 1,001마리를 몰고 갔다
1998년 6월 16일, 판문점. 여든세 살 노인이 소 500마리를 앞세우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열일곱에 진 빚을 갚으러.
노인이 소를 몰고 국경을 넘었다
1998년 6월 16일, 판문점
여든세 살 노인이 흰 트럭 50대에 소 500마리를 싣고 판문점 앞에 섰다. 분단 이후 민간 차량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다.
노인은 소 떼를 몰고 가는 길을 빚 갚으러 가는 길이라고 불렀다. 소와 빚 사이에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놓여 있었다.
열일곱 소년이 소 판 돈을 들고 떠났다
강원도 통천, 열일곱 살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농부의 맏아들로 자랐다. 열일곱 살에 정주영은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집을 나섰다.
70원은 아버지가 소 한 마리를 판 전부였다. 서울로 간 농부의 아들은 자동차와 배와 아파트를 짓는 사람이 되었다. 떠나온 고향은 휴전선 북쪽에 남았다.
정주영이 열일곱의 빚을 갚기로 했다
1998년 6월, 판문점 앞
1998년 봄, 남북 사이의 빗장이 조금 풀렸다. 여든세 살의 정주영은 비로소 고향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자동차도 배도 아닌 소 떼를 앞세워서였다.
“이제 그 한 마리 소가 천 마리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려,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갑니다.”
정주영은 아버지가 판 소 한 마리를, 500마리로 불려 돌려보내기로 했다.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이 한 농부의 아들 앞에서 열렸다.
정주영이 천 마리에 한 마리를 더 얹었다
1998년 10월 27일, 2차 방북
첫 500마리가 휴전선을 넘고 넉 달 뒤, 정주영은 다시 소를 몰고 판문점에 섰다. 두 번째로 넘긴 소는 501마리였다. 딱 떨어지는 1,000마리가 아니었다.
“천 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태자.”
두 번에 걸쳐 넘어간 소는 모두 1,001마리가 되었다. 1,000은 끝이고 1,001은 시작이라는 뜻이었다. 70원짜리 빚은 갚되, 고향과의 길은 닫지 않겠다는 셈이었다.
소 떼가 지나간 길로 배가 떠났다
1998년 11월 18일, 동해항
소 떼가 판문점을 넘고 다섯 달 뒤인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으로 가는 첫 관광선 금강호가 동해항을 떠났다. 800명이 넘는 승객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배를 타고 북녘 땅을 밟았다.
정주영이 판문점에서 갚은 것은 소 판 돈 70원이 아니었다. 열일곱에 등지고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주영은 2001년 세상을 떠났다. 소 1,001마리가 넘은 판문점과 뒤이어 열린 금강산 뱃길이 농부의 아들이 남긴 셈이었다.
정주영이 천 마리도 아니고 1,001마리를 보낸 건, 천이 마침표 같아서 한 마리를 더 얹은 거라고.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 영상으로 보기📖 블로그에서 자세히 읽기출처 (10)
- 부산일보 — [이 주일의 역사] 정주영 소떼 방북 (1998.6.1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정주영 소떼 방북사건
- 한국경제 1998.6.16 — '소 판돈 70원 갚으러 왔어요'…인간 정주영 (Ch.3 어록 verbatim 근거)
- The Washington Post — S. Korean Auto Tycoon Drives Cattle to North (1998.6.17)
- 경향신문 — [어제의 오늘] 1998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소떼 방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정주영 (생애·출신, 1915-11-25 강원도 통천 출생)
- 위키백과 — 정주영 (출생 1915-11-25 / 별세 2001-03-21)
- 매일신문 — [오늘의 역사] 1998.10.27 정주영 2차 소떼 방북 (501마리)
- 머니S — 줄지어 판문점 건넌 소 '1001마리' (Ch.4 '마침표' 발언 근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남북관광협력사업 (금강호 1998.11.18 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