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장이 자기 수용소에 갇혔다
1952년 5월, 거제도. 수용소장이 자기 포로들에게 끌려 들어갔다. 그를 꺼낸 건 총이 아니었다.
수용소장이 끌려 들어갔다
1952년 5월, 거제도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책임지던 미군 준장 프랜시스 도드가 제76수용소 정문 앞에 섰다. 잠시 뒤, 도드는 철조망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전쟁은 철조망 안으로 옮겨졌다
판문점이 멈춘 자리
1951년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이 열렸다. 전선의 총성은 잦아들었지만, 회담은 포로 송환 문제에서 막혀 있었다. 포로를 본인 뜻과 상관없이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인가가 마지막 쟁점이었다.
거제도에는 17만 명이 넘는 북한군·중국군 포로가 갇혀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가 나뉘어, 철조망 안에서 또 다른 전쟁을 벌였다.
포로들을 한 명씩 가려내는 작업이 이미 유혈 사태로 번진 뒤였다. 포로 대표들이 수용소장 도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도드가 정문으로 걸어갔다
1952년 5월 7일 오후
포로 대표 이학구가 제76수용소 정문에서 도드를 만나자고 했다. 도드가 함께 있던 장교 한 명과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작업조가 드나들도록 정문이 열린 순간, 포로들이 도드를 붙잡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함께 있던 장교는 문기둥을 붙잡고 빠져나왔지만, 도드는 철조망 안으로 사라졌다.
콜슨이 종이에 서명했다
장군을 꺼낸 값
미 8군은 찰스 콜슨 준장을 새 수용소장으로 급파했다. 콜슨이 전화선을 끌어와 철조망 안의 도드와 통화했다. 포로들의 요구는 무력이 아니었다. 유엔군이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죽이고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유엔군에 의해 많은 포로가 죽거나 다친 일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1952년 5월 10일 밤 9시 반, 도드가 78시간 만에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도드를 꺼낸 것은 구출 작전이 아니라 콜슨이 서명한 종이 한 장이었다.
별 하나가 25년 뒤에 돌아왔다
거제도, 석방 이후
콜슨이 서명한 문서는 곧 공산 측의 선전 자료가 됐다. 유엔군 스스로 포로를 죽였다고 적은 종이였다.
1952년 5월 23일, 도드와 콜슨은 나란히 대령으로 강등됐다. 6월, 새 수용소장 헤이든 보트너 준장이 제76수용소를 무력으로 다시 장악했다.
포로 17만 명을 가둔 철조망 안에서, 미군 장군 한 명이 78시간 동안 포로였다.
거제도에서 포로들한테 붙잡힌 미군 장군을 구한 건, 알고 보면 군대가 아니라 종이 한 장의 서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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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으로 보기📖 블로그에서 자세히 읽기출처 (7)
- Wikipedia — Geoje POW camp (포로 17만·5월 7일 납치·제76수용소·이학구·78시간·콜슨 서명·5월 10일 21:30 석방·보트너 6월 진압·31명 사망)
- Wikipedia — Francis Dodd (general) (78시간 억류·5월 23일 대령 강등·1977년 준장 계급 복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거제도 포로 소요사건 (5월 7일 도드 납치·콜슨 신임 수용소장·이학구·대령 강등 교차검증)
- AUSA — Koje Island: The 1952 Korean Hostage Crisis (정문 작업조 통과 중 납치·부관 문기둥 탈출·콜슨 전화 통화 교차검증)
- 나무위키 — 거제 포로수용소 (제76수용소·도드 납치·콜슨 요구 수용 석방 교차검증)
- TIME archive — PRISONERS: One-Star Hostage (도드 피랍·콜슨 전화·요구사항·5월 10일 밤 9시 반 석방 교차검증)
- HistoryNet — War Behind The Wire: Koje-do Prison Camp (보트너 6월 10일 제76수용소 진압·31명 사망 교차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