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4개월 된 아파트가 무너졌다
1970년 4월 8일 아침, 마포 와우산. 지은 지 4개월 된 5층 아파트가 주민들 위로 무너져 내렸다.
와우아파트 15동이 무너져 내렸다
1970년 4월 8일 아침, 마포 와우산
산비탈에 줄지어 선 시민아파트 가운데 와우아파트 15동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5층 건물이 산비탈 아래 판잣집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파트 주민 33명이 죽었다. 산비탈 아래 판잣집에서 한 명이 더 죽었다. 무너진 까닭은 4년 전 서울에서 시작됐다.
서울시가 무허가 건물 13만 동을 셌다
4년 전, 1966년 서울
1966년 봄, 김현옥이 서울시장으로 왔다. 별명이 불도저였다. 서울시가 무허가 건물을 셌다.
같은 해 가을에는 미국 대통령 존슨이 서울에 왔다. 정부는 김포공항에서 시내로 드는 길가의 판잣집을 함석 담장으로 가리는 계획부터 세웠다. 판잣집은 헐기엔 너무 많았고, 두기엔 너무 잘 보였다.
김현옥의 답은 아파트였다. 판잣집을 헐고, 판잣집에 살던 사람들을 산비탈의 새 아파트로 올려보내는 계획이었다.
김현옥은 속도를 택했다
3년 뒤, 1969년
1969년은 시민아파트 사업이 시작된 해였다. 서울시는 3년 안에 시민아파트 2,000동, 10만 호를 짓기로 했다. 잡힌 돈은 240억 원이었다.
산비탈 높은 곳에 왜 짓느냐는 물음에 김현옥이 내놓은 답이, 훗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와우산 비탈의 아파트는 1969년 6월 26일 착공해 꼭 6개월 만인 12월 26일에 준공됐다. 서울시가 책정한 공사비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공사는 시작됐다.
기둥에 철근이 5개뿐이었다
잔해 속에서 기둥이 나왔다
사고 원인 조사에서 받침기둥이 문제로 드러났다. 설계대로라면 기둥 하나에 19mm 철근이 70개씩 들어가야 했다. 무너진 기둥에는 5개 안팎씩만 박혀 있었다. 시멘트마저 모자랐다.
와우아파트 한 동만의 일이 아니었다. 사고 뒤 서울시가 시민아파트 전체를 점검했다.
지은 지 4개월 된 아파트가 무너진 까닭은 산비탈도, 운도 아니었다. 무너질 이유가 준공된 날부터 기둥 속에 박혀 있었다. 와우아파트 15동은 가장 먼저 무너졌을 뿐이었다.
와우아파트 자리는 공원이 됐다
이레 뒤, 1970년 4월 15일
김현옥이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다. 구청장과 설계자, 현장 감독, 건설사 사장이 구속되거나 자리를 잃었다.
6개월 만에 올라간 집은 넉 달 만에 내려왔다. 와우산 비탈에는 아파트 대신 나무가 남았다.
와우아파트 붕괴 뒤 서울시가 시민아파트 405동을 점검했더니 349동이 보수 판정을 받았다 — 무너진 한 동이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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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붕괴 일자·사상자·철근 70→5·점검 결과)
-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 위키백과 (착공·준공 일자, 19mm 철근 70→5개, 405동 중 349동, 101동 철거, 와우공원)
- 1960년대 서울시 무허가주택 정책 — 서울기록원 (1967년 무허가 건물 약 13만 6천 동 집계)
- 서울 개발의 그림자 '불도저시장' 김현옥 — 경향신문 (청와대 발언 인용·서중석/손정목 증언, 사망 33명, 사임·내무부 장관 복귀)
- 취약계층 위한 와우아파트, 완공 4개월 만에 붕괴 — 인천투데이
- 김현옥 — 위키백과 (1966년 서울시장 취임, 1970년 4월 15일 사임)
-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 — 서울기록원 시정사진 컬렉션 (재임기간 1966.03.31~1970.04.15 공식 명시)
- 70년대 서울 도시계획 주역 손정목 교수 별세 — 경향신문 (1970년 양택식 발탁, 기획관리관·도시계획국장 1970~77 재임)
- The Unforgotten War — Korea Policy Institute (1966년 존슨 방한, 김포공항~시내 길가 판잣집 함석 가림 계획)
- 시민아파트 1969~1971년 240억 원·2,000동 10만 호 계획 —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