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580억에 서명했다
1997년 12월 3일 밤, 광화문 정부청사. 부총리가 된 지 2주, 그가 펜을 들었다.
임창열이 펜을 들었다
1997년 12월 3일 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한 남자가 종이 한 장에 이름을 적었다. 그 종이 한 장에 580억 달러가 걸려 있었다.
임창열이 경제부총리가 된 지 꼭 2주째 되는 밤이었다. 한국은 12월 3일의 서명에서부터 'IMF 시대'로 들어섰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
1997년 가을, 한국
1997년, 큰 기업이 줄줄이 쓰러졌다. 1월엔 한보가 무너졌고, 여름엔 기아마저 흔들렸다. 가을이 되자 달러가 나라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위기가 손쓸 수 없이 번지자 정부가 경제팀을 갈아치웠다. 1997년 11월 19일, 강경식 부총리가 물러나고 임창열이 후임 부총리가 됐다. 임창열에게 주어진 건 거의 빈 금고였다.
임창열이 IMF에 손을 벌렸다
취임 사흘째
1997년 11월 21일 밤 10시, 광화문 정부청사. 임창열이 마이크 앞에 섰다. 부총리가 된 지 사흘째였다. 임창열이 IMF에 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발표한 지 12일 뒤, 1997년 12월 3일. 임창열이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한 번 적은 이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꺼내 쓴 돈은 195억이었다
서명이 끝나도
서명으로 위기가 멈추지는 않았다. 1998년 1월, 사람들이 집집마다 장롱을 열었다. 350만 명이 금붙이를 들고 은행 앞에 줄을 섰다. 모인 금은 227톤이었다.
모은 금까지 보태 한국은 빚을 갚아 나갔다. 195억 달러를 갚는 데 걸린 시간은 예정과 한참 달랐다.
한국이 IMF에서 실제로 꺼내 쓴 돈은 195억 달러다. 발표된 약 580억 달러는 IMF 210억에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과 13개국이 약속한 2선 자금까지 더한 583억 5천만 달러를 가리킨다.
한국이 3년 먼저 갚았다
2001년 8월 23일
당초 상환 예정은 2004년이었다. 2001년 8월 23일, 한국은행이 마지막 1억 4천만 달러를 IMF로 보냈다. 195억 달러가 모두 사라졌다.
발표된 구제금융은 약 580억 달러였다. 한국이 실제로 빌려 쓰고 되돌려준 돈은 195억 달러였다. 나머지 절반 넘는 돈은 끝내 꺼내 쓰지 않았다.
580억 달러 빌렸다던 IMF 외환위기, 한국이 실제로 꺼내 쓴 돈은 195억뿐이었고 예정보다 3년 일찍 다 갚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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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의 연표
- 한국일보 — 97년 12월3일 IMF사태, 정부 구제금융 협상 타결
-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 2001.08.23 IMF 차입금 195억 달러 전액 상환
- 우리역사넷 — IMF 사태 1997
- 국가기록원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 극복 (총 583.5억 구성: IMF 210·IBRD 100·ADB·13개국 2선 233.5)
- MBC 뉴스투데이 [오늘 다시보기] — 1997 IMF 구제금융 요청 (11/21 오후 10시 임창열 발표)
- 위키백과 — 금모으기 운동 (1998.1 시작·약 351만 명·약 227톤)
-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 운명의 갈림길, IMF 협상의 전말 (캉드쉬 11/16 15:30 극비입국·12/3 7:25pm 서명·583.5억 구성·195억 실인출)
-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 IMF 협상의 전말 ex-01-p2 (캉드쉬 가명 극비입국 정황)
- 택스넷 — IMF 차입금 조기상환 완료 (2001.8.23 195억 전액·당초 2004.5 만기)
- 위키백과 — 기아그룹 (1997.7.15 부도유예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