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200대가 군인 쪽으로 갔다
1980년 5월 20일 저녁 6시, 광주. 택시 200여 대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군인들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택시는 기사의 밥줄이었다
1980년 5월 20일 저녁 6시, 광주 무등경기장
택시 200여 대가 무등경기장 앞에 모였다. 기사들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도청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택시는 기사들이 하루를 버는 밥줄이었다. 기사들은 자기 밥줄을 몰고, 군인들이 선 쪽으로 향했다.
공수부대가 광주에 들어왔다
이틀 전, 거리에서 벌어진 일
1980년 5월 18일, 공수부대가 광주에 내려왔다. 군인들은 거리에서 학생과 시민을 곤봉과 대검으로 다뤘다.
택시 기사들은 처음엔 부상자를 실어 날랐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하지만 계엄군은 부상자를 실은 택시를 세웠다. 환자와 운전사를 함께 끌어내려 다시 때리고 데려갔다. 도망치는 학생을 태운 택시는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찔렀다.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
기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택시를 무기로 쓰기로 한 날
혼자서는 안 됐다. 택시 한 대가 부상자를 실으면 군인들이 곧바로 차를 세워 기사를 끌어냈다. 남은 방법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5월 20일 저녁 6시, 무등경기장 앞으로 모이자. 기사들은 입에서 입으로 시각과 장소를 정했다.
택시는 기사들이 가진 거의 전부였다. 기사들은 자기 택시를 몰고 최루탄과 곤봉 앞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전조등이 도시를 깨웠다
200개의 전조등이 움직이자
맨 앞에는 태극기가 걸렸고, 대형 트럭과 버스가 길을 텄다. 뒤로 택시가 줄지어 도청으로 향했다.
200대가 한꺼번에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들어오자, 시내 곳곳의 계엄군 바리케이드가 무너졌다. 흩어졌던 시민들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와 박수를 쳤다.
“평생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일생에.”
행렬이 금남로 저지선에 닿자, 방독면을 쓴 공수부대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쏟아부었다. 차 유리를 부수고 운전사를 끌어내려 집단으로 때렸다.
택시 한 대로는 부상자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200대가 한 줄로 서자, 군인들도 도시 전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사들이 가진 밥줄이, 광주가 다시 일어서는 신호가 됐다.
광주는 5월 20일을 따로 기념한다
민주기사의 날
1986년부터 광주는 5월 20일을 '민주기사의 날'로 정해 기념한다. 해마다 운전기사들이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까지 행렬을 다시 잇는다.
5·18 하면 학생과 시민군을 먼저 떠올리지만, 5월 20일 저녁 도청 앞으로 가장 먼저 밀고 들어간 건 밥줄을 몰고 나온 택시기사 200명이었다.
기사들이 켠 건 전조등 200개였다. 5월 20일 밤 광주가 본 건, 광주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5·18 하면 학생·시민군을 떠올리지만, 5월 20일 밤 도청으로 가장 먼저 밀고 들어간 건 밥줄인 택시를 몰고 나온 운전기사 200명이었다.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 영상으로 보기📖 블로그에서 자세히 읽기출처 (4)
- 경향신문(2017) — 1980년 5월, 나는 광주의 택시운전사였습니다 (1인칭 증언: 차량시위 동기·부상자 이송 중 계엄군 구타·도망 학생 태운 택시 대검 사건·무등경기장 저녁 6시 집결·태극기/전조등/경적·시내 바리케이드 붕괴·시민 환호·금남로 최루탄과 집단구타. 인용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이행기), '평생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일생에'(장훈명), '이대로 죽을 수 없다'(기사들 입 모음))
- 위키백과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5월 20일 택시·시내외 버스 200여 대가 계엄군 진입로를 가로막음. 20일 24시 계엄군 광주역 앞 최초 집단 발포, 21일 전남도청 앞 무차별 발포 등 날짜 흐름)
- 뉴시스(2020) —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메운 차량 시위 재현 (저녁 6시 택시·버스 약 200대 금남로 차량시위, 전조등·비상등 켜고 재현, 무등경기장→금남로 민주기사의 날 재현 행사)
- 우리역사넷 — 5·18 광주 민주화운동 (5월 20일 택시기사들이 버스·트럭 기사와 함께 도청 향해 가두시위, 시위가 절정에 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