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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글로벌 휴머니티· 공유받은 글

리초만 알아들었다

2020년 4월 4일, 포트블레어. 리초가 숨을 거두자, 사전이 있는데도 되살릴 수 없는 게 하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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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리초가 죽자 한 언어가 끝났다

2020년 4월 4일, 포트블레어

한 여자가 숨을 거뒀다. 그녀와 함께, 사전이 한 권 멀쩡히 있는데도 다시는 못 살릴 언어 하나가 사라졌다.

이름은 리초. 인도 안다만 제도, 그레이트 안다만 부족의 사레어를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사레어를 말할 수 있던 사람
1
리초가 떠나자 0이 됐다.
CH. 2

부족은 5천에서 50으로 줄었다

5천 명이 50명이 되기까지

그레이트 안다만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떠난 첫 인류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안다만 제도의 섬에서 수만 년을 살았다.

1858년, 영국이 포트블레어에 형무소를 세우며 섬으로 들어왔다. 1858년 당시 그레이트 안다만 사람은 약 5천 명이었다. 처음엔 충돌로, 곧이어 폐렴·홍역·매독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면역이 없는 병이었다.

1961년, 남은 사람은 19명이었다. 여러 갈래로 갈리던 부족말은 화자를 하나둘 잃었다. 리초는 줄어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지라케는 부족의 왕이라 불렸고, 리초는 지라케의 첫 아이였다.

1858년, 영국이 들어올 무렵
약 5,000명
리초가 떠난 지금
약 50명
CH. 3

리초는 20년을 기록에 바쳤다

2000년, 섬에 언어학자가 왔다

2000년 무렵, 언어학자 안비타 아비가 안다만 제도에 닿았다. 사라져 가는 그레이트 안다만 말을 기록하러 온 사람이었다. 받아 적으려면, 입으로 말을 불러 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리초가 기록을 맡았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불러 주는 일이었다. 한 번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리초는 20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았다.

리초는 단어마다 어느 말에서 왔는지 가려냈다. 사레에서 온 말, 코라에서 온 말, 제루에서 온 말이 리초의 입에서 갈라졌다. 문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리초의 판단으로 정해졌다.

리초가 말을 불러 준 세월
20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넘겼다.
CH. 4

사전은 남았지만 판단은 사라졌다

사전은 완성됐다

20년의 기록은 책이 됐다. 2011년 그레이트 안다만 말 사전이, 2013년 문법서가 나왔다. 2021년에는 부족의 이야기와 노래를 묶은 책까지 나왔다.

단어는 종이에 적혔다. 하지만 어떤 단어가 사레의 것인지 코라의 것인지, 문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은 리초뿐이었다.

단어 사이를 가르는 판단은 사전에 적히지 않는다. 리초가 알아듣고, 리초가 옳다고 해야 살아 있는 말이었다. 사전은 단어를 가뒀지만, 말을 되살릴 귀는 가두지 못했다.

리초의 죽음과 함께, 한 언어의 마지막 지식과 한 부족 전체의 지혜가 사라졌다.
리초의 부고에서
CH. 5

리초의 말은 책 속에 잠들었다

2020년 4월 4일 이후

리초가 떠난 뒤에도 그레이트 안다만 사람은 약 50명이 안다만 제도에 산다. 다만 사레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는 없다.

안비타 아비가 남긴 사전과 문법서, 그리고 이야기와 노래를 묶은 책은 도서관에 남았다. 단어와 노래는 그렇게 종이 위에서 읽힌다.

다만, 어떤 단어가 어느 말에서 왔는지 귀로 가려내던 사람은 2020년 4월 4일로 끝났다. 사전은 말을 적을 수 있어도, 알아듣는 일까지 적어 두지는 못했다.

— 끝 —
카톡 한 줄

언어가 사라진다는 건 단어가 아니라, 그걸 알아듣던 마지막 사람이 사라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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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