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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과학·예술· 공유받은 글

퀴리의 공책은 납에 갇혔다

1898년 파리, 마리 퀴리가 공책에 글을 적었다. 90년 뒤에도 그 공책은 맨손으로 못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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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마리 퀴리의 공책은 맨손으로 못 만진다

지금, 파리의 한 도서관 지하

100년이 넘은 공책 한 권이 납을 댄 상자 안에 들어 있다. 펼치려면 각서를 쓰고 보호장비를 입어야 한다.

공책의 주인은 마리 퀴리. 화학 노트였고, 마지막으로 글씨가 적힌 것은 90여 년 전이다. 그래도 공책에서는 방사선이 나온다.

마지막 글씨가 적힌 지
90여
그래도 방사선은 멈추지 않는다.
CH. 2

마리 퀴리는 빛나는 가루를 쫓았다

1898년, 파리의 낡은 창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공부하러 파리로 왔다. 피에르 퀴리와 함께, 비가 새는 창고에서 우라늄 광석을 끓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쫓고 있었다.

1898년, 두 사람은 새로운 원소 둘을 세상에 알렸다. 하나는 폴로늄 — 마리 퀴리의 조국 폴란드에서 딴 이름이었다. 다른 하나가 라듐이었다. 라듐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희미하게 빛났다.

라듐을 손에 쥐려면 광석을 수 톤씩 끓여야 했다. 마리 퀴리는 몇 해 동안 광석을 끓였다. 그렇게 끓인 광석에서 건져낸 라듐은 0.1그램 안팎이었다.

끓인 우라늄 광석
수 톤
건져낸 라듐
0.1그램
CH. 3

마리 퀴리는 라듐을 주머니에 넣었다

라듐을 손에 넣은 뒤

라듐은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마리 퀴리는 라듐을 담은 시험관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책상 서랍에도 두었다.

밤이 되면 마리 퀴리는 작업실로 갔다. 선반 위에 늘어선 시험관들이 스스로 빛을 냈다. 마리 퀴리는 라듐을 곁에 두는 일을 기쁨이라 불렀다.

밤에 작업실에 들어가면 사방에서 시험관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빛나는 시험관들은 마치 요정의 불빛 같았다.
마리 퀴리, 『피에르 퀴리』(1923)

라듐의 위험이 알려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라듐을 곁에 둔 세월이 30년을 넘겼다. 30여 년 동안 라듐은 마리 퀴리의 몸에도, 공책에도 스며들었다.

CH. 4

라듐이 마리 퀴리를 쓰러뜨렸다

1934년 7월 4일

마리 퀴리가 숨을 거뒀다. 병명은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가 피를 만들지 못하는 병이었다. 수십 년 동안 몸을 지나간 방사선이 원인이었다.

라듐이 남은 곳은 마리 퀴리의 몸만이 아니었다. 공책에도, 의자에도, 요리책에도, 옷에도 라듐이 배어 있었다. 파리의 실험실은 1991년에야 정화됐다. 사망한 지 60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공책을 오염시킨 것은 라듐-226이었다. 반감기가 1,600년 — 100년이 지나도 거의 줄지 않는다. 마리 퀴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라듐이, 공책 속에서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라듐-226 반감기
1,600
퀴리가 떠난 지 90여 년 — 라듐은 거의 줄지 않았다.
CH. 5

공책은 납 상자에서 천 년을 기다린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금

마리 퀴리의 공책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 납을 댄 상자 안에 있다. 펼치려는 연구자는 각서에 서명하고 보호장비를 입는다.

라듐은 앞으로도 천 수백 년을 더 희미하게 빛난다. 공책을 맨손으로 넘겨도 되는 때는 서기 350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만진 손
맨손
지금 공책을 펴는 손
각서 + 보호장비

1995년, 프랑스는 마리 퀴리를 팡테옹에 옮겼다. 관에는 납을 댔다. 마리 퀴리의 몸이 아직 라듐을 품고 있어서였다. 마리 퀴리가 '요정의 불빛'이라 부른 빛은, 사람보다 천오백 년을 더 산다.

— 끝 —
카톡 한 줄

마리 퀴리 공책이 100년 뒤에도 맨손으로 못 만지는 건, 그녀가 라듐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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