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은 달에서 거짓말을 했다
1971년 8월 2일, 달. 데이비드 스콧이 흙 위에 작은 인형을 내려놓고, 무전엔 '로버 뒤쪽 좀 치우는 중'이라 답했다.
스콧이 달 흙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달에 누운 인형 하나
1971년 8월 2일, 달 헤들리 골짜기. 데이비드 스콧이 흙 위에 작은 알루미늄 인형 하나를 눕혀 놓았다.
인형 옆엔 손바닥만 한 금속판이 함께 놓였다. 우주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콧은 인형과 금속판을 내려놓고도, 관제소 무전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왜 숨겼나.
소유즈 11호가 돌아오지 못했다
적을 이기려고 달까지 갔다
1971년, 미국과 소련은 적이었다. 우주는 두 나라가 서로를 앞지르려 올라간 또 하나의 전선이었다. 누가 먼저 달에 가느냐가 곧 체제의 자존심이었다.
아폴로 15호 발사를 한 달 앞둔 6월 30일, 소련 우주선 소유즈 11호가 지구로 돌아왔다. 캡슐을 열자 세 사람이 자리에 앉은 채 숨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기가 새어 나간 것이었다.
아폴로 15호 선장 데이비드 스콧은 소유즈 11호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발사 전, 스콧은 벨기에 화가 폴 반 후이동크와 저녁 자리에서 약속을 하나 했다. 달에 두고 올 작은 조각 하나를 만들기로.
조각엔 조건이 붙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닐 것, 어느 나라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 달의 극한 더위와 추위를 견딜 것.
스콧이 양쪽의 죽음을 함께 적었다
마지막 걸음에서 멈췄다
8월 2일,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달 위 작업이 끝나갈 무렵. 스콧은 착륙선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월면차 뒤편에 인형을 눕혔다.
금속판엔 이름 열넷이 알파벳 순서로 새겨져 있었다. 미국 우주인 여덟, 소련 우주인 여섯. 며칠 전 숨진 소유즈 11호의 세 사람도 명단에 있었다. 적의 죽음까지 같은 줄에 적은 것이다.
“그냥 로버 뒤쪽 좀 치우는 중이에요, 조.”
무얼 하느냐는 관제소 물음에 스콧이 돌려준 답이었다. 달에 무엇을 내려놓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약속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화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 우주 계획이 장삿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는 조건이었다.
반 후이동크가 950점을 팔려 했다
1년도 안 돼 시장에 나왔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스콧은 기자회견에서야 입을 열었다. 죽은 우주인과 우주비행사 모두를 위해 금속판을 만들었다고.
이듬해 봄, 워싱턴의 항공우주박물관이 같은 인형의 복제품 하나를 받아 전시했다. 복제품 전시까지는 추모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1972년 7월, 한 미술 잡지에 전면 광고가 실렸다. 폴 반 후이동크가 달 인형의 복제품 950점을 한 점에 750달러씩 팔겠다는 광고였다.
스콧이 화가의 이름을 숨기고 무전에 침묵한 까닭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우주에서 죽은 이들을 기린 물건이 상품이 되지 않게 하려던 것. 나사가 항의하자 판매는 멈췄다. 그러나 멈추기 전에 복제품 한 점은 이미 팔린 뒤였다.
두 나라의 죽음이 함께 누워 있다
한 명단에 함께 누웠다
헤들리 골짜기의 인형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누워 있다. 곁의 금속판엔 미국 우주인 여덟과 소련 우주인 여섯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섞여 있다.
서로를 이기려고 달까지 올라간 두 나라가, 달에 남긴 단 하나의 조각상에선 죽은 이름을 한 줄에 나란히 적었다.
달에 남은 유일한 조각상 곁 명단엔, 적이던 미국과 소련의 죽은 우주인이 함께 적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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