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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는 다 같이 켜진 적이 없다

1664년 5월, 베르사유. 루이 14세가 정원에 들어서자 분수가 일제히 솟았다. 물이 없는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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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베르사유는 물이 모자란 땅이었다

물 없는 땅에 분수가 솟았다

1664년 5월 7일, 베르사유. 루이 14세가 손님 600명을 새 정원으로 불렀다. 분수란 분수가 모두 물을 뿜고 있었다.

하지만 베르사유는 늪과 모래뿐인 자리에 세워졌다. 분수에 댈 물이 늘 모자랐다. 정원을 채운 물기둥은 어디서 왔을까.

CH. 2

루이 14세가 늪을 정원으로 바꿨다

물이 가장 귀한 곳에 분수를 놓다

1661년, 루이 14세가 스물둘에 직접 나라를 쥐었다. 소란한 파리에서 멀찍이, 아버지의 사냥 별장이 있던 늪지 베르사유를 권력의 무대로 골랐다.

정원 설계자 앙드레 르노트르가 1661년부터 땅을 갈았다. 루이 14세는 정원을 물로 채우라 했다. 흙과 나무는 다스릴 수 있어도, 물은 다스리기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치세 말 베르사유의 물줄기
1,600
지금의 네 배

분수가 늘어날수록 물은 더 모자랐다. 늪 위의 정원이 유럽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 되어 갔다.

CH. 3

루이 14세가 강을 끌어오기로 했다

분수를 줄이는 대신, 강을 옮기다

1681년, 루이 14세가 센강 물을 퍼 올리기로 했다. 마를리 기계가 강가에 들어섰다. 물레바퀴 14개가 펌프 250여 개를 돌려 150미터 높이로 물을 밀어 올렸다. 당대 가장 거대한 기계였다.

그래도 모자랐다. 1685년, 루이 14세가 더 멀리 보았다. 80킬로미터 떨어진 외르강을 통째로 베르사유로 끌어오라 명했다.

흙을 옮기는 공사가 아니었다. 강 하나의 물길을 바꾸는 일이었다. 한번 삽을 뜨면 되돌릴 수 없었다.

외르강 운하에 동원된 병사
2만
CH. 4

물은 끝내 오지 않았다

운하는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1688년 전쟁이 터지자 병사들은 전선으로 불려 갔다. 외르강 물길은 미완으로 버려졌다. 당대 기록은 공사장의 열병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적었다.

마를리 기계가 퍼 올린 물도 기대의 절반뿐이었다. 분수를 한꺼번에 다 켤 물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강을 끌어오려는 시도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1672년, 재상 콜베르가 묘안을 냈다. 정원지기들이 휘파람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게 했다.

루이 14세가 다가오는 분수만 켜고, 지나간 분수는 곧바로 껐다. 왕은 늘 만개한 분수만 보았다. 한 번도, 모든 분수가 같이 솟은 적은 없었다.

CH. 5

분수는 지금도 다 같이 켜지지 않는다

휘파람은 무전기로 바뀌었다

3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베르사유의 분수는 한꺼번에 다 켜지지 않는다. 정원지기들의 휘파람은 무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관람객이 '그랑드 조'에서 카메라에 담는 물기둥은, 물이 넘쳐서가 아니다. 모자란 물을 솜씨껏 돌려 만든 풍경이다.

베르사유의 화려함은, 모자란 물을 들키지 않게 다룬 솜씨였다.

— 끝 —
카톡 한 줄

베르사유 분수가 한 번도 다 같이 켜진 적 없다는 거, 알고 보면 물이 모자라서 왕 앞에서만 켜고 뒤에서 껐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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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