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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의학·신체· 공유받은 글

게이지는 돌아왔지만 게이지가 아니었다

1848년 9월, 미국 버몬트. 스물다섯 현장감독의 머리를 쇠막대가 뚫고 지나갔다. 그는 살아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 스크롤
CH. 1

쇠막대가 게이지의 머리를 지나갔다

게이지는 살아서 마차에 올랐다

1848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주 캐번디시. 철도 공사장 감독 피니어스 게이지, 스물다섯. 화약을 다지던 쇠막대가 그의 왼뺨 밑으로 들어가 정수리를 뚫고 나갔다.

게이지는 몇 분 만에 말을 했다. 마차에 올라 읍내로 갔다. 살아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게이지를 알던 사람들은, 돌아온 사람이 게이지가 아니라고 했다.

CH. 2

게이지는 공사장에서 가장 믿음직했다

가장 신중한 사람에게 맡긴 일

1848년, 철도가 뉴잉글랜드의 바위산을 뚫고 나아가던 때였다. 바위에 구멍을 내고 화약을 다져 넣는 일은 공사장에서 가장 위험했다. 러틀랜드·벌링턴 철도 회사는 화약 다지는 작업을 게이지에게 맡겼다.

게이지의 고용주들은 게이지를 '가장 유능하고 믿을 만한 감독'이라 여겼다. 인부들 사이에서도 게이지의 인기가 높았다. 머리를 뚫은 쇠막대는 대장장이가 게이지의 주문대로 특별히 만든 물건이었다.

쇠막대가 머리를 지나간 사고 당일 저녁에도, 게이지의 정신은 또렷했다. 게이지는 친구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며칠이면 다시 일하러 나갈 텐데.
1848년 9월, 담당의 존 할로의 진료 기록이 옮긴 게이지의 말
CH. 3

게이지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은 나았지만 자리는 사라졌다

1849년, 게이지의 상처는 아물었다. 왼눈의 시력은 잃었지만 걷고 말하고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게이지를 '가장 유능한 감독'이라 부르던 회사는, 달라진 게이지에게 자리를 다시 내주지 않았다.

돌아온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게이지가 아니었다.
게이지를 알던 사람들 — 담당의 존 할로가 옮긴 말

게이지는 곧 길을 떠났다. 한동안 뉴욕 바넘 박물관에서 스스로와 쇠막대를 구경거리로 세웠고, 1852년 8월에는 배에 올랐다. 게이지를 아무도 모르는 칠레로 떠났다.

칠레에서 게이지가 맡은 일은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역마차를 모는 것이었다. 매일 새벽 말을 챙기고 손님을 태우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산길을 달려야 했다.

CH. 4

게이지는 매일 새벽 말을 맸다

괴물이 된 적 없는 사람

게이지의 이야기는 백 년 넘게 하나의 경고로 굳었다. 앞머리를 다친 뒤 술과 싸움에 빠진 폐인, 아무 약속도 지키지 못한 사람. 여러 교과서가 게이지를 폐인으로 실었다.

그런데 칠레의 기록은 달랐다. 계획을 못 지킨다던 사람이, 누구보다 빈틈없는 시간표를 매일 지켰다.

게이지가 칠레에서 마차를 몬 세월
7
1852년 8월부터 1859년까지, 매일 여섯 마리 말과 산길 시간표

먼 훗날 학자들이 자료를 다시 맞춰 보고 내린 결론은 이랬다. 다친 뇌도, 다친 사람도 천천히 다시 자리를 잡았다는 것. 돌아온 사람은 괴물이 아니라, 자기를 다시 배워 간 사람이었다.

머리를 뚫고 지나간 쇠막대를, 게이지는 칠레의 산길에서도 곁에 두었다. 죽는 날까지 쇠막대를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CH. 5

두개골과 쇠막대는 지금 나란히 있다

유리장 안에 나란히

1859년, 게이지는 건강이 나빠지자 가족이 있던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1860년 5월 21일, 게이지는 발작 끝에 숨졌다. 쇠막대가 머리를 지나간 지 열두 해 만이었다.

게이지의 두개골과 머리를 뚫었던 쇠막대는 지금 하버드 의대 워런 박물관에 함께 남아 있다.

두 물건이 놓인 유리장은 앞머리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처음 보여 준 자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같은 유리장은, 크게 부서진 뒤에도 뇌가 길을 다시 찾는다는 것도 조용히 보여 준다.

— 끝 —
카톡 한 줄

뇌 다치면 딴사람 된다는 그 유명한 게이지 이야기, 알고 보면 칠레에서 마차 몰며 잃었던 자기를 도로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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