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25만 개, 에디슨은 안 팔았다
1893년 5월 1일, 시카고. 전구 25만 개가 한꺼번에 켜질 밤. 정작 그 전구를 만든 에디슨은 한 개도 팔지 않았다.
누구의 전기가 박람회를 켜나
1893년 5월 1일, 시카고
그날 저녁, 미국 대통령이 버튼 하나를 눌렀다. 박람회장 전체가 한꺼번에 환해졌다.
박람회장을 채운 전구를 준비한 사람은 조지 웨스팅하우스, 준비한 전구는 모두 25만 개였다.
그런데 전구 25만 개를 켤 전기가 누구의 것이 될지는, 오랫동안 정해지지 않은 싸움이었다.
에디슨의 전기는 멀리 못 갔다
1880년대, 두 개의 전기
에디슨은 1879년에 백열전구를 세상에 내놨다. 문제는 전기를 멀리 보내는 일이었다. 에디슨이 고른 직류는 발전소에서 1마일 남짓만 가도 힘이 빠졌다.
직류로 도시를 밝히려면 동네마다 발전소를 하나씩 세워야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다른 길을 봤다. 교류는 전압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수십 마일을 건너갔다.
교류를 실제로 돌릴 심장은 니콜라 테슬라의 특허였다. 테슬라가 설계한 다상 교류 방식을 웨스팅하우스가 사들여, 회사의 무기로 삼았다.
에디슨 쪽은 맞불을 놨다. 교류를 위험한 전기로 몰았고, 교류로 동물을 감전시켜 죽이는 시연을 열었고, 사형 집행에도 교류를 쓰게 했다.
웨스팅하우스가 값을 깎아 불렀다
1892년, 입찰
1892년, 박람회를 밝힐 회사를 뽑는 입찰이 열렸다. 박람회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4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세계가 지켜볼 무대였다.
에디슨 쪽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이 먼저 값을 불렀다. 처음엔 훨씬 높았고, 낮춰서 다시 부른 값이 55만 4천 달러였다.
웨스팅하우스는 39만 9천 달러를 불렀다. 제너럴 일렉트릭보다 15만 달러 넘게 낮은,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값이었다.
웨스팅하우스가 이렇게까지 값을 낮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박람회는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였고, 교류가 안전하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자리는 박람회뿐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전구를 살 수 없었다
이겼는데, 전구가 없었다
입찰은 이겼다. 그런데 막상 켤 전구가 없었다. 백열전구의 핵심 특허를 에디슨 쪽 제너럴 일렉트릭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웨스팅하우스에게 전구를 팔지 않았다. 박람회를 밝힐 전구를, 정작 입찰에서 이긴 쪽이 한 개도 구할 수 없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전구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에디슨 특허를 피해 유리 마개로 막는 방식으로 설계를 바꾸고, 개장 전까지 공장을 돌렸다.
새로 만든 전구는 오래 못 갔다. 자주 타 버려서 박람회 내내 일꾼들이 갈아 끼웠고, 제너럴 일렉트릭은 개장 직전 특허 침해 소송까지 걸었다.
1893년 5월 1일, 대통령 클리블랜드가 버튼을 눌렀다. 전구 10만 개 가까이가 한꺼번에 켜지며 박람회장이 환해졌다. 박람회를 밝힌 전기는 에디슨의 직류가 아니라 테슬라의 교류였다.
교류가 나이아가라를 가져갔다
1893년 10월, 나이아가라
박람회 안에는 테슬라의 전시관이 따로 있었다. 구리 달걀 하나가 전기만으로 스스로 곧추서서 빙글빙글 돌았다. 교류가 만든 회전 자기장이었다.
박람회가 끝나기도 전인 1893년 10월 26일, 나이아가라 폭포로 전기를 만드는 큰 공사가 웨스팅하우스에게 돌아갔다. 심사를 이끈 켈빈 경이 교류의 손을 들어 줬다.
시카고를 밝힌 전기도, 나이아가라를 돌린 전기도 교류였다. 오늘 집집마다 벽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도 똑같은 교류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를 밝힌 전구 25만 개, 알고 보면 에디슨 게 아니라 웨스팅하우스가 급히 직접 만든 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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