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인물· 공유받은 글

계약은 24곡이었다

1926년 8월 오사카, 한 여자가 계약에 없던 노래를 한 곡 더 불렀다. 죽음을 노래한 곡이었다.

↓ 스크롤
CH. 1

한 여자가 계약에 없던 한 곡을 더 불렀다

계약은 24곡이었다

1926년 8월 1일, 오사카의 한 녹음실. 한 여자가 계약한 스물네 곡을 다 불렀다. 그리고 계약에 없던 한 곡이 더 녹음됐다.

죽음을 노래한 곡이었다. 사흘 뒤, 윤심덕은 부산으로 가는 배 위에서 사라졌다.

계약한 곡 / 녹음한 곡
24 → 25
스물다섯 번째가 마지막 녹음이었다
CH. 2

성악은 돈이 되지 않았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였다

윤심덕은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도쿄음악학교에서 성악을 배웠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였다. 사람들은 '악단의 여왕'이라 불렀다.

1923년, 윤심덕이 경성 무대에 데뷔했다. 조선 첫 소프라노의 독창회였다. 그런데 독창회로 받는 보수는 교통비 정도였다.

성악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최정상 소프라노 윤심덕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무대 위의 이름과 손에 쥔 돈이 따로 놀았다.

무대 위
조선 최초 소프라노, '악단의 여왕'
손에 쥔 돈
독창회 보수는 교통비 수준
CH. 3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붙였다

계약 밖의 한 곡

1926년 여름, 윤심덕이 오사카로 갔다. 성악가가 아니라 대중가요 가수로, 닛토레코드와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돈이 필요했다.

8월 1일, 윤심덕이 계약한 스물네 곡을 다 녹음했다. 계약은 스물네 곡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한 곡이 더 녹음됐다.

이바노비치라는 사람이 만든 왈츠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붙였다. 동생 윤성덕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사의 찬미, 윤심덕 작사

제목은 '사의 찬미'. 죽음을 기린다는 뜻이었다. 계약에 없던 스물다섯 번째 곡이었다.

CH. 4

사흘 뒤 윤심덕이 배에서 사라졌다

사람은 사라지고 가방만 남았다

1926년 8월 3일 밤, 윤심덕이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 올랐다.

8월 4일 새벽, 배가 대마도 근처를 지날 무렵. 순찰을 돌던 급사가 두 사람의 선실을 열었다. 사람은 없었다. 가방만 놓여 있었다.

실종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유서라 할 만한 건 남기지 않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시신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 전 오사카에서 계약 밖으로 녹음한 스물다섯 번째 곡이, 음반이 되어 나왔다. 닛토레코드가 실종 소식과 함께 '사의 찬미'를 팔았다.

'사의 찬미' 이전
부유층의 재산 목록
'사의 찬미' 이후
대중 속으로 퍼진 물건

죽음을 노래한 스물다섯 번째 곡은 한국 대중가요 최초의 히트곡으로 남았다.

CH. 5

윤심덕의 몸은 나오지 않았다

로마에서 봤다는 소문

몇 해 동안 소문이 돌았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윤심덕이 악기점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간판 이름과 동네까지 나왔다.

김우진의 동생이 조선총독부를 통해 로마의 일본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했다. 1931년 11월, 로마에 조선인 악기점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심덕의 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계약 밖에서 녹음한 노래 한 곡은 남았다. 한국 대중가요가 흘러온 자리의 맨 앞에, '사의 찬미'가 있다.

— 끝 —
카톡 한 줄

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이, 조선 첫 소프라노가 바다에서 사라지기 사흘 전 계약에 없이 녹음한 한 곡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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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