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코는 644마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1955년 히로시마, 열두 살 소녀가 약 봉지를 뜯어 종이학을 접었다. 1,000마리를 접으면 산다고 했다.
사다코가 학을 접기 시작했다
1955년, 히로시마의 병실
1955년 히로시마 적십자병원. 열두 살 소녀가 침대 위에서 종이학을 접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사다코 사사키.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사다코가 644마리에서 손을 멈췄다고 전한다.
사다코는 가장 빠른 아이였다
9년 전, 두 살의 사다코
1945년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 두 살 사다코는 폭심지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집에 있었다.
폭풍이 사다코를 창밖으로 날렸다. 화상도, 눈에 보이는 상처도 없었다. 사다코는 멀쩡해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남아 있었다. 방사선은 이미 세포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부모도 사다코도 알지 못했다.
사다코는 건강하게 자랐다. 학교에서 계주 선수로 뽑힐 만큼 빠른 아이였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1954년 11월, 사다코의 목에 멍울이 돋았다. 원자폭탄이 남긴 병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사다코는 접기로 결심했다
1955년 2월 21일, 적십자병원
1955년 2월 21일, 사다코는 히로시마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진단명은 백혈병이었다.
병실에서 사다코는 천 마리 학 이야기를 들었다. 1,000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오래된 이야기였다.
사다코는 접기 시작했다. 종이가 모자라 약을 싸던 포장지를 폈고, 손에 잡히는 온갖 종잇조각을 다 폈다.
어떤 학은 너무 작아 바늘 끝으로 접어야 했다. 종이가 생길 때마다 사다코는 또 접었다.
널리 퍼진 이야기는 644에서 멈춘다
644마리라는 숫자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가 있다. 사다코는 644마리를 접고 세상을 떠났고, 남은 학은 친구들이 접어 관에 넣었다는 이야기다.
644마리라는 숫자는 1977년 작가 엘리너 코어가 쓴 소설에서 나왔다. 소설은 채우지 못한 학을 남기며 끝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의 기록과 사다코의 가족은 다르게 말한다. 사다코는 1955년 8월 말 1,000마리를 채웠고, 멈추지 않고 계속 접었다.
오빠 마사히로가 남긴 기록으로는 사다코가 접은 학은 1,300마리를 넘었다. 목표를 채운 뒤에도 사다코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사다코는 열두 살에 떠났다
1958년 5월 5일, 평화공원
1955년 10월 25일, 사다코 사사키는 열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넘치게 접은 학은 소원을 이뤄주지 못했다.
사다코가 떠난 뒤, 반 친구들이 모금을 시작했다. 모금은 곧 일본 전역으로 번졌고, 전국 3,100여 개 학교와 아홉 나라 아이들이 돈을 보탰다.
사다코가 떠나고 3년이 채 안 된 1958년 5월 5일 어린이날,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어린이 평화 기념비가 세워졌다. 꼭대기에는 종이학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소녀상이 얹혔고, 사다코를 본뜬 모습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외침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세계에 평화를 세우기 위한.”
히로시마 종이학 소녀가 644마리 접고 죽었다는 건 소설 속 얘기고, 실제론 1,000마리를 넘겨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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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dako Sasaki — Wikipedia
- Sadako and the Thousand Paper Cranes — Wikipedia
- Children's Peace Monument — Wikipedia
- SASAKI Sadako — Children's Peace Memorial
- The Birth of Children's Peace Monument — Hiroshima Peace Culture Foundation (Kids Peace Station)
- Children's Peace Monument (모금 개시·완공 타임라인·3,100개교·9개국·비문) — Hiroshima Prefectural Office
- Documenting Hiroshima: October 25, 1955 — Hiroshima Peace Media Center (Chugoku Shimb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