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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가장 거룩한 문은 무슬림이 연다

새벽 4시, 예루살렘 구시가. 아디브 주데가 쇠열쇠를 들고 돌 골목을 걸었다. 839년째 이어진 걸음이다.

↓ 스크롤
CH. 1

무슬림 두 집안이 교회 열쇠를 쥐고 있다

839년 동안, 예루살렘 구시가의 새벽

새벽 4시 무렵이면 아디브 주데가 구시가의 돌 골목을 걸었다. 손에는 쇠열쇠 하나가 들려 있었다. 골목 끝에는 예수 무덤 성당의 정문이 있다. 기독교에서 가장 거룩하다는 문이다.

문 앞에서 주데는 열쇠를 와지 누세이베에게 건넸다. 예수 무덤 성당의 문은 아침마다 누세이베 가문의 손으로 열려 왔다.

여섯 교파 중 열쇠를 쥔 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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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맡은 주데 가문도, 문을 여는 누세이베 가문도 무슬림이다

예수 무덤 성당은 여섯 교파가 나눠 갖고 있는 건물이다. 한 교파는 지붕 위에 산다. 주데 가문과 누세이베 가문은 여섯 교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CH. 2

여섯 교파가 한 지붕을 나눠 쓴다

한 건물, 여섯 주인

예수 무덤 성당은 골고다 언덕과 예수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자리를 한 지붕 아래 넣은 건물이다.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여섯 교파가 성당 한 채를 나눠 쓴다. 기둥 하나, 촛대 하나까지 어느 교파 몫인지 정해져 있다.

1757년 오스만 술탄 오스만 3세가 칙령을 내렸다. 성당 안의 것을 지금 있는 그대로 두라는 명령이었다. 1852년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다시 못 박았다. 여섯 교파가 전부 동의하지 않으면 성당 안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현상유지라고 부르는 원칙이다.

1728년
판화 속 창턱에 나무 사다리가 그려져 있다
2026년
사다리는 지금도 같은 창턱에 있다

성당 정면 창턱의 나무 사다리는 늦어도 1728년 판화에 이미 그려져 있다. 치우려면 여섯 교파가 모두 동의해야 한다. 1997년에는 관광객 한 명이 사다리를 성당 안에 숨겨 놓았다고 전한다. 사다리는 같은 창턱으로 돌아왔다.

사다리 한 개를 옮기는 합의도 나오지 않는 건물에서, 아침마다 성당 문을 누가 열 것인가는 더 어려운 문제였다. 현상유지 아래에서 문 여는 일만은 성당 밖 사람 몫으로 남았다. 열쇠는 밤마다 주데 가문 집에서 잠들었고, 문은 아침마다 누세이베 가문 손으로 열렸다. 두 집안 모두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무슬림 가문이다.

CH. 3

살라딘이 열쇠를 무슬림 집안에 맡겼다

1187년, 예루살렘

열쇠가 성당 밖으로 나간 것은 현상유지보다 570년 앞선다. 1187년, 살라딘이 십자군에게서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도시의 주인이 바뀐 해였다. 십자군이 미사를 올리던 성당의 운명은 살라딘의 손에 넘어갔다.

살라딘은 성당 문을 사흘 동안 닫았다. 참모 중에는 성당을 부수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기독교인이 예루살렘에 미련을 갖지 못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대부분은 남겨 두자고 했다. 사흘 뒤 살라딘의 명으로 문은 다시 열렸다. 프랑크 순례자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다시 열린 문의 열쇠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전해지기로 주데 가문이 쇠열쇠를 받았고, 문을 여닫는 일은 누세이베 가문이 맡았다.

전해지기로, 살라딘은 성당을 나눠 쓰는 교파들의 다툼을 보고 어느 편도 아닌 손을 찾았다고 한다. 열쇠를 쥔 손이 곧 문 열리는 시각을 정한다. 살라딘이 고른 손은 성당 안이 아니라 성당 밖에 있었다.

살라딘이 열쇠를 성당 밖으로 내보낸 해
1187
주데 가문은 지금도 같은 열쇠를 지키고 있다

누세이베 가문은 7세기 칼리프 오마르 때부터 문을 맡았다고 전한다. 다만 가문이 내놓는 문서는 살라딘 시대인 12세기부터다. 1757년 현상유지가 굳은 뒤로는, 성당 밖에 열쇠를 두는 배치를 바꾸려 해도 여섯 교파가 모두 동의해야 한다.

CH. 4

사다리가 성당 안에서 문 밖으로 나왔다

여섯 교파가 서로를 못 믿는 이유

여섯 교파가 서로를 어디까지 못 믿는지는 2002년 여름 성당 지붕에서 드러났다. 지붕에 앉아 있던 콥트 정교회 수도사가 의자를 그늘 쪽으로 옮겼다. 지붕을 함께 쓰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쪽이 의자가 움직인 데 항의했고, 싸움이 붙었다.

2002년 여름, 성당 지붕에서 의자가 움직인 거리
20cm
에티오피아 수도사 7명과 콥트 수도사 4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2008년 11월에는 성당 안에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행렬이 지나갔다. 그리스 정교회 측은 행렬에 그리스 수도사 한 명이 함께 걸어야 예수 무덤 위 작은 예배당의 몫을 지킬 수 있다고 요구했다. 아르메니아 측이 거부하자 그리스 측이 행렬을 막아섰고, 수도사들이 주먹다짐을 했다. 기둥과 촛대의 몫까지 적어 둔 건물에서, 종이에 적히지 않은 일이 생기면 성직자들끼리 몸으로 부딪쳤다.

839년째 되풀이된 새벽의 순서에는 여섯 교파의 불신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누세이베가 문 앞에 서면, 문에 뚫린 작은 창으로 성당 안에서 나무 사다리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성당 문의 위쪽 자물쇠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달려 있었다. 누세이베는 성당 안에서 건네받은 사다리를 문에 기대고 올라가, 주데에게 받은 열쇠로 위쪽 자물쇠를 열었다. 내려와서 아래쪽 자물쇠를 열었다. 문이 열렸다.

기독교에서 가장 거룩한 문의 열쇠가 성당 밖에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섯 교파 중 누구도 나머지 다섯에게 열쇠를 넘길 수 없다. 사다리는 성당 안에서 나왔고, 자물쇠는 성당 밖 사람이 열었다. 1187년에 성당 밖으로 나간 열쇠는 성당 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CH. 5

2026년 2월, 문짝이 경첩에서 내려왔다

2026년 2월 19일, 예수 무덤 성당

저녁이 되면 새벽의 순서가 거꾸로 돌았다. 와지 누세이베가 문을 잠그고, 아디브 주데가 열쇠를 받아 집으로 가져갔다. 겨울에는 저녁 7시 반, 여름에는 한 시간쯤 뒤였다. 열쇠를 건네고 되받는 순서가 839년째 되풀이됐다.

1187년
살라딘이 쇠열쇠를 성당 밖으로 내보냈다
2026년 2월 19일
예수 무덤 성당의 문짝이 경첩에서 떨어져 나왔다

2026년 2월 19일, 성당 바닥을 복원하던 인부들이 정면의 나무 문짝을 경첩에서 떼어냈다. 문짝을 손보는 것은 1810년 이후 처음이었다. 입구는 옛 문짝을 찍은 사진을 인쇄한 임시 패널로 가려졌다. 문짝이 없는 동안 두 무슬림 가문의 새벽이 어떤 순서로 돌아갈지는, 문짝을 떼어내면서도 정해두지 않았다.

주데 가문이 지키는 열쇠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살라딘 시대의 것으로 전해지는 850년 된 열쇠는 오래 쓰다 부러졌다. 자물쇠에 실제로 들어가는 쇠는 나중에 만든 500년쯤 된 두 번째 열쇠다. 839년 사이 열쇠는 한 번 바뀌었고, 열쇠를 쥔 손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 끝 —
카톡 한 줄

기독교에서 가장 거룩한 문을 무슬림이 여는 건, 여섯 교파가 서로에게 열쇠를 못 맡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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