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는 엿으로 먹고살지 않았다
1960년대 골목, 동전 없는 아이가 빈 병을 내밀었다. 그런데 엿장수는 엿으로 먹고살지 않았다.
엿장수는 엿으로 먹고살지 않았다
동전이 없는 아이는 빈 병을 들고 나왔다
1960년대 어느 골목. 동전 한 닢 없는 아이가 빈 병 하나를 내밀었다. 쩔꺽, 쩔꺽. 엿장수가 가위를 두 번 쳤다.
엿가위는 엿을 떼는 연장이었다. 그런데 진짜 쓸모는 자르는 게 아니라 소리였다. 골목 끝까지 닿는 쇳소리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빈 병을 내밀면 엿이 나왔다. 헌 고무신 한 짝을 내밀어도, 깨진 쇠붙이를 내밀어도 엿이 나왔다. 엿장수가 정말 팔던 것은 엿이 아니었다.
고물은 엿으로, 엿은 돈으로 바뀌었다
쇠붙이 하나가 단맛으로 바뀌던 시절
1960년대에는 단것이 흔치 않았다. 사 먹기보다 바꿔 먹는 편이 쉬웠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고물이 엿 한 가락과 바뀌었으니, 아이들은 집 안을 뒤졌다.
깨진 무쇠솥 조각, 헌 고무신 한 짝, 구리 한 줌, 빈 병. 재활용될 만한 쇠붙이와 고물은 무엇이든 엿과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맞바꿈은 단맛이었지만, 엿장수에게는 장사였다.
엿장수는 처음엔 엿판을 지게에 지고 다녔다. 1960년대 후반, 리어카가 흔해지면서 손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손수레에는 엿보다 고물이 더 많이 실렸다.
청주에 윤팔도라는 엿장수가 있었다. 팔십 평생을 장터에서 가위를 쳤다. 전국 장터를 돌며 한 해 2천만 원을 벌던 때도 있었다.
아들이 사표를 내고 가위를 잡았다
성악을 배운 아들이 회사를 그만뒀다
윤팔도에게는 아들 윤일권이 있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다녔다.
젊은 날의 윤팔도는 장터에서 번 돈을 술판에 다 내던졌다. 남은 것은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벌이뿐이었다. 아버지가 평생 놓지 않은 것은 엿가위 하나였다.
평생 한 우물만 판 아버지의 엿장사가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들 윤일권이 마음을 정했다.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며, 사표를 내고 엿가위를 대신 집었다.
“나도 엿 팔라요.”
엿장수가 판 것은 엿이 아니었다
가위 소리가 판 것은 엿이 아니었다
엿장수의 진짜 장사는 엿이 아니라 고물이었다. 아이들에게 받은 무쇠솥 조각과 구리를 모아 고물상에 넘겼다. 엿은 미끼였고, 돈은 고물에서 나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고물값이 떨어졌다. 시골 형편이 나아지면서 고물을 엿으로 바꿀 이유도 줄었다. 엿장수는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울산에 이태화라는 사람이 있었다. 1985년까지 엿장수들을 데리고 고물상을 운영했다. 서울신문이 찾아갔을 때, 지금 고물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엿장수 출신이 많았다. 엿장수가 사라진 자리에서 고물상 사장이 나왔다.
사라져가던 엿장수 일을 윤일권이 되살렸다. 폐백집과 호텔에 엿을 대고, 2006년에는 인터넷으로 팔았다. 아버지가 한 해 2천만 원을 벌던 엿장사였다. 아들 윤일권은 같은 엿장사로 한 해 매출 2억 원을 올렸다.
엿장수는 떠났고 고물상이 남았다
가위 소리는 그쳤다
엿가위는 엿을 떼는 연장이자, 사람을 부르는 악기였다. 엿의 양은 정해진 값이 없었다. 엿장수가 날마다 정했다. 정해진 값이 없어서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생겼다.
빈 병 하나가 단맛으로 바뀌던 골목의 맞바꿈은 1980년대에 끝났다. 엿장수가 떠난 골목에는 고물상 간판이 걸렸다. 윤팔도의 가위를 아들 윤일권이 다시 잡았지만, 쩔꺽거리던 골목의 가위 소리는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들린다.
엿장수가 판 건 엿이 아니라 고물이었고, 사라진 자리엔 고물상 사장이 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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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엿장수」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울신문 「사라지는 것을 찾아 - 시골 엿장수」 (2001-11-10)
- 오마이뉴스 「엿장수로 억대 부자 된 윤팔도·윤일권 부자」 (2010-02-20)
- 노컷뉴스 「대 이어 2백억 매출 꿈꾸는 신세대 엿장수」 (윤일권 매출·성악·회사 그만둠 교차확인)
- 이코노아이(econoi) 「늘리고, 자르고 … '엿장수 마음대로'」 (고물-엿 교환·유래·80년대 소멸·고물상 엿장수 출신 교차확인)
- 매일신문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 - 엿장수 가위소리」 (2019-03-13)
- 천지일보 「추억의 직업들 ② 엿장수」 (2017-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