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고 가라, 추기경이 말했다
1987년 6월, 명동성당. 경찰이 문 앞까지 왔다. 안에는 쫓겨 온 학생 수백 명. 추기경이 그 앞을 막고 섰다.
학생 수백 명이 성당에 갇혔다
문 앞의 추기경
1987년 6월 10일 밤, 서울 명동성당. 경찰에 쫓긴 학생 수백 명이 성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이 성당을 둘러쌌다. 정부는 병력 투입을 준비했다. 나갈 곳이 사라진 학생들은 성당 안에 갇혔다.
성당 담장 하나가 학생 수백 명을 지킬 수 있을까.
국민이 대통령을 못 뽑던 때였다
성당 밖의 1987년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를 받다 숨졌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실제 사인은 물고문이었다. 경찰 발표를 믿는 사람은 없었고, 시민들의 분노가 쌓여 갔다.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음 날 6월 10일, 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거리로 나선 대열이 경찰에 밀려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의 주인은 서울대교구장 김수환이었다. 김수환은 이미 4월, 정부의 호헌 선언을 정면으로 비판한 사람이었다.
김수환이 정부에 답했다
밟고 가라
1987년 6월 12일 늦은 밤, 정부 고위 당국자가 명동성당을 은밀히 찾아왔다. 성당에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통보였다.
서울대교구장 김수환이 답했다. 돌아가서 한 마디도 빼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고 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뒤에 신부들이, 또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그다음입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명동성당 안에는 사제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수녀들이 성당 문 앞에 나와 섰다.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 사제복과 수녀복이 벽처럼 늘어섰다. 학생들을 잡으려면, 성직자들을 먼저 지나야 했다.
정부가 끝내 못 들어왔다
엿새의 벽
농성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성당 밖 경찰의 포위는 그대로였고, 초기 600여 명이던 농성자는 350여 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끝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추기경과 사제,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는 장면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정권이 감당할 수 없었다.
학생들을 지킨 건 성당의 담이 아니었다. 성당을 부수면 정권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1987년 6월 15일 오후, 농성자들은 자체 논의 끝에 스스로 걸어 나가기로 했다. 끌려 나간 것이 아니었다. 농성이 시작된 지 110시간 만이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걸어 나왔다
담장이 지킨 것
1987년 6월 15일 오후 2시, 학생들이 명동성당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경찰은 길을 비켰고, 한 명도 연행되지 않았다.
열나흘 뒤인 6월 29일,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명동성당 담장이 엿새 동안 막아선 건 경찰이 아니었다. 김수환이 지킨 건 학생 몇백 명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는다는 약속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알고 보면 김수환이 명동성당 문 앞에서 '나를 밟고 가라'며 버틴 엿새에서 시작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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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민주 항쟁 — 위키백과
- 6월 항쟁 — 나무위키
- June Democratic Struggle — Wikipedia
- 기록으로 보는 김수환 추기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나를 밟고 가라' 원문)
- 6월 항쟁, 그 위대한 승리 — 가톨릭평화신문 (6.15 오후 2시 해산식)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위키백과 (치안본부장 강민창 발표 '억 하고 죽었다'·1987.1.14 물고문 확정)
- 명동성당 농성의 재미있는 기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600→350 감소·거수표결·자진 해산)
- 해시태그로 보는 6월 민주 항쟁의 기록 —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박종철·이한열·4·13 호헌)
- 항쟁의 징검다리, 명동성당 농성 —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6월 12일 정부 당국자 야간 방문·600명 구성)
- 실록 민주화운동 83. 명동성당 농성 — 경향신문 (사제 50여 명 소집·자진 해산·연행 0)
- 이한열 최루탄 피격사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6.9 연세대 피격)
- 4·13 호헌 조치 — 위키백과 (4월 호헌조치·김수환 등 비판 시국성명)
- 김수환 — 나무위키 ('나를 밟고 가라' 원문·정부 고위당국자 야간 방문 정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