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현대사· 공유받은 글

사다리는 7층에서 멈췄다

1971년 12월 25일 아침, 충무로 대연각호텔. 안에 300명이 있었다. 가장 긴 사다리차가 7층에서 멈췄다.

↓ 스크롤
CH. 1

성탄절 아침, 대연각이 불탔다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충무로

성탄절 아침, 서울 충무로의 21층 대연각호텔 커피숍에서 프로판 가스통이 터졌다. 불길과 연기가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에는 300명가량이 있었다.

대연각호텔
21층
가장 긴 사다리차
7층까지

사다리가 닿지 않는 위층 사람들에게 남은 길은 두 갈래였다.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옥상으로 오르거나.

CH. 2

통금 풀린 밤, 호텔이 가득 찼다

하루 전, 12월 24일 밤

1971년 서울에는 자정 이후의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다. 통금이 풀리는 밤은 한 해에 두 번, 12월 24일 성탄 전야와 12월 31일 제야뿐이었다.

한 해에 통행금지가 풀리는 밤
2
12월 24일 성탄 전야 · 12월 31일 제야

성탄 전야의 명동과 충무로는 밤새 붐볐다. 문을 연 지 세 해가 안 된 최고급 대연각호텔 객실도 밤새 가득 찼다.

손님들 사이에 열아홉 살 대학 신입생 둘이 있었다. 가사를 쓰는 방희준과 곡을 붙이는 민병무. 공짜 숙박권이 생겨서, 둘은 성탄 전야를 대연각에서 보내기로 했다.

둘이 만들어 둔 노래 한 곡이 악보로 남아 있었다. 성탄절 아침이 밝을 때까지, 둘은 대연각에 있었다.

CH. 3

사람들이 매트리스를 안고 뛰었다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커피숍 주방의 프로판 가스통이 터진 시각이 오전 9시 50분이었다.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불길과 연기는 계단과 통로를 타고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소방차들이 왔다. 국내에서 가장 긴 32m 사다리차를 세웠지만, 사다리 끝은 7층 언저리에서 멈췄다. 8층부터 21층까지는 사다리 밖의 세상이었다.

창턱에 매달려 버티던 사람들이 하나둘 결정을 내렸다. 침대 매트리스를 끌어안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결정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려 숨진 사람
38
매트리스도 소용없었다

불타는 호텔과 떨어지는 사람들은 TV로 생중계됐다. 성탄절의 안방까지 화면이 닿았다. 화면 밖 계단에서는 반대로 위를 향해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꼭대기 21층 위, 옥상 출입문을 향해서였다.

CH. 4

옥상 문은 잠겨 있었다

21층 위, 마지막 문

사다리가 닿지 않는 층의 사람들에게 옥상은 마지막 살길이었다. 연기가 차오르는 계단을 올라, 사람들이 옥상 출입문 앞까지 다다랐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잠겨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다 오른 사람들은 잠긴 문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늘에는 군과 경찰, 미8군의 헬기가 떴다. 옥상에는 헬기가 내려앉을 자리가 없었고, 강한 바람 속에서 헬기가 끌어올린 사람은 여덟 명이었다.

불은 일곱 시간을 갔다. 안에 있던 300명 가운데 163명이 숨졌다. 아래로는 사다리가 일곱 층에서 멈췄고, 위로는 마지막 문이 잠겨 있었다. 성탄 전야에 숙박권을 들고 들어간 열아홉 살 둘도, 대연각을 나오지 못했다.

CH. 5

악보 한 장이 무대에 올랐다

6년 뒤, 1977년

형 민병무가 남긴 유품 속에 악보 한 장이 있었다. 유품을 정리하던 동생 민병호와 친구들이 찾아냈다. 형이 곡을 붙이고 방희준이 가사를 쓴 노래, '젊은 연인들'이었다.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민병호가 속한 서울대 트리오가 '젊은 연인들'을 불렀다. 노래는 무대를 넘어 오래 불렸다.

불탄 대연각호텔 건물은 수리를 거쳐 고려대연각타워라는 사무실 건물이 됐고, 충무로 같은 자리에 아직 서 있다. 건물은 이름을 바꾸고 남았고, 노래는 '젊은 연인들'이라는 이름 그대로 남았다.

— 끝 —
카톡 한 줄

1977년 대학가요제의 '젊은 연인들'은 6년 전 대연각 화재로 숨진 열아홉 작곡가가 남긴 악보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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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