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세계사 한국인 모름· 공유받은 글

폭격기가 79층에 박혔다

1945년 7월 28일 아침, 뉴욕. 안개를 뚫고 내려온 폭격기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79층에 박혔다. 적기가 아니었다.

↓ 스크롤
CH. 1

적기가 아니었다

1945년 7월 28일 오전, 맨해튼

토요일 아침의 뉴욕 34번가. 안개를 뚫고 내려온 폭격기 한 대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79층에 통째로 박혔다.

폭격기가 박힌 곳
79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북쪽 벽

적의 공격이 아니었다. 기체에는 미 육군 항공대 표식이 있었고, 조종석에는 유럽 전선에서 살아 돌아온 조종사가 앉아 있었다.

CH. 2

스미스는 유럽에서 살아 돌아왔다

1945년 여름, 전쟁의 끝자락

1945년 7월의 미국은 전쟁의 한가운데이자 끝자락이었다. 유럽의 전쟁은 5월에 끝났고, 태평양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뉴욕 하늘에는 군용기가 날마다 지나다녔다.

조종사 윌리엄 스미스 중령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장교였다. 유럽 전선에서 마흔 번이 넘는 폭격 임무를 마쳤고, 무공 훈장을 여러 개 받았다.

1945년 7월 28일 아침, 스미스는 매사추세츠 베드포드 기지에서 B-25 미첼 폭격기를 몰고 이륙했다. 목적지는 뉴저지 뉴어크. 사람을 실어 나르는 일상적인 수송 비행이었고, 기체에는 부사관 한 명과 해군 수병 한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지난 2년, 유럽 하늘
폭격 임무 40여 회
1945년 7월 28일
수송 비행 한 번

짧은 비행이었다. 다만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뉴욕을 덮고 있었다.

CH. 3

관제탑은 꼭대기가 안 보인다고 했다

뉴욕 상공, 라과디아 관제탑과의 교신

스미스가 라과디아 관제탑을 무전으로 불렀다. 뉴어크 쪽 날씨를 물었다. 관제탑의 대답에는 경고가 함께 붙어 있었다.

지금 우리 자리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라과디아 관제탑

관제탑은 앞이 3마일 넘게 보이지 않으면 라과디아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스미스는 뉴어크행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고도를 낮춘 폭격기가 안개 아래로 내려갔다.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맨해튼의 고층 빌딩 숲 사이를 지났고, 빌딩 하나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안개 속에서 위치가 어긋나 있었다. 폭격기는 아직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었다.

CH. 4

79층에는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토요일 오전, 79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79층에는 가톨릭 전쟁구호회 사무실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직원들이 나와 유럽으로 보낼 구호 업무를 보고 있었다.

폭격기가 빌딩 북쪽 벽을 뚫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벽에는 약 5.5미터에 6미터짜리 구멍이 났고, 연료에 불이 붙으며 복도로 불길이 번졌다. 탑승자 세 명과 빌딩 안의 열한 명, 열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엔진 하나는 빌딩을 통째로 관통했다. 남쪽 벽을 뚫고 나가 한 블록을 날아간 끝에 옆 건물 옥상에 떨어졌다. 다른 엔진 하나는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떨어지며 케이블을 끊었다.

80층 엘리베이터 안내원 베티 루 올리버가 폭발에 튕겨 나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응급 처치를 마친 구조대가 올리버를 아래로 내려보내려고 다른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문이 닫히고 내려가기 시작한 직후, 손상된 케이블이 끊어졌다.

올리버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떨어진 거리
75
약 300미터, 지하 바닥까지 — 올리버는 살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통로 바닥에 쌓여 있던 케이블 뭉치가 완충 스프링이 됐고, 좁은 통로에 눌린 공기가 낙하 속도를 줄였다는 풀이가 나왔다. 목과 등, 골반이 부러진 채로 올리버는 살아서 구조됐다. 안개 속에서 위치를 잃은 폭격기가 마지막에 박힌 곳은, 관제탑이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79층이었다.

CH. 5

빌딩은 월요일에 다시 열렸다

이틀 뒤, 7월 30일 월요일

불은 40분 만에 꺼졌다. 뉴욕 소방대가 잡은 불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의 불로 기록에 남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골조는 버텼다. 이틀 뒤인 7월 30일 월요일 아침, 빌딩의 많은 층이 평소처럼 문을 열고 사람들을 받았다.

베티 루 올리버는 병원에서 몸을 추슬러 살아 돌아갔다. 스무 살 안내원이 엘리베이터로 75층을 떨어지고 살아남은 기록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깨진 적이 없다.

폭격기가 뚫은 79층의 구멍은 메워졌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970년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으로 서 있었다.

— 끝 —
카톡 한 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945년에 폭격기가 박히고도 무너지지 않았고, 이틀 뒤 월요일 아침에 다시 문을 열었다.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 영상으로 보기
출처 (10)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