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기업· 공유받은 글

바나나맛우유 통 하나 때문에 대일유업이 해외까지 갔다

1974년 6월, 대일유업이 우유를 항아리 모양 통에 담아 진열대에 올렸다. 그 모양은 아직도 안 바뀌었다.

↓ 스크롤
CH. 1

1974년 6월, 우유통이 항아리로 나왔다

우유가 항아리에 담겨 나왔다

1974년 6월 진열대에 올라온 통은 유리병도 비닐팩도 아니었다. 배가 불룩하고 입이 좁은, 항아리였다.

우유 한 통을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겠다고 대일유업 개발팀은 바다를 건넜다.

1974년 6월 이후 단지 용기가 바뀐 횟수
0
용량 240밀리리터까지 1974년 6월 그대로다.
CH. 2

정부는 우유를 권했고 사람들은 안 마셨다

우유가 남았다

항아리 모양 우유통은 우유가 남아돌던 시절에 나왔다. 1970년대 정부는 식생활 개선과 낙농 진흥을 내걸고 우유 마시기 운동을 폈다. 젖소는 늘었고 원유는 쏟아졌다. 그런데 흰 우유는 팔리지 않았다.

흰 우유가 안 팔리자 기업들은 가공우유로 방향을 틀었다. 1973년, 대일유업 연구소에도 과제가 떨어졌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마실 우유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과제를 받고 한 달이 지나도록 답이 안 나왔다. 회의 중에 한 직원이 동생 생일 선물로 바나나를 사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회의 안건과는 상관없는 말이었다.

1973년 무렵 평균 월급
3~4만 원
바나나 값 2000원이면
짜장면 20그릇

바나나는 수입이 제한된 과일이었다. 생일 선물로나 한 번 사는 물건이었다. 개발팀은 바나나라는 단어를 붙잡았다. 2000원짜리 과일의 맛을 우유에 넣기로 했다. 맛은 정해졌고, 남은 문제는 통이었다.

CH. 3

개발팀이 백자 달항아리 사진을 받았다

왕실 백자가 우유통이 됐다

1970년대 우유는 유리병이나 비닐팩에 담겼다. 바나나 맛 우유를 같은 통에 담으면 진열대에서 다른 우유와 구별되지 않았다. 개발팀은 통부터 다르게 만들기로 했다.

모양이 잡히지 않아 개발팀은 사내에 수소문했다. 선전부 직원이 사진 한 장을 들고 왔다. 사진 속에는 백자대원호라는 둥근 도자기 한 점이 있었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
왕실이 쓰던 둥근 그릇
1974년 대일유업의 우유통
바나나 맛 우유를 담은 단지

모양을 정하고 나니 만들 방법이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달항아리 모양을 뽑아내는 방법을 국내에서는 찾지 못했다. 유리병으로 돌아가면 진열대에서 다른 우유와 다시 같아진다.

개발팀은 미국까지 건너갔다. 항아리 모양을 포기했다면 건너갈 일도 없었다.

CH. 4

세계에서 빙그레만 단지 용기를 만든다

대일유업은 컵 두 개를 돌려 붙였다

용기는 위아래를 따로 찍어 만든다. 두 컵을 마주 대고 고속으로 돌리면 마찰로 열이 생기고, 맞닿은 가운데가 녹아 붙는다. 단지 용기의 허리를 지나는 선은 붙인 자국이다. 용기를 만들 기계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어 독일에서 들여왔다.

인쇄는 붙이기 전에 윗컵에 했다. 입구에는 턱을 만들어, 통이 기울어도 내용물이 쉽게 흐르지 않게 했다. 몸통은 바나나 색이 비치도록 반투명으로 만들었다.

1974년 6월, 대일유업은 공정을 전부 통과한 통에 바나나 맛 우유를 담아 내보냈다. 1973년에 과제가 떨어졌으니, 통 하나를 붙들고 1년을 보낸 셈이다.

위아래를 마찰열로 붙여 용기를 만드는 회사
1
5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빙그레 한 곳뿐이다.

1974년 진열대에서 눈에 띄려고 고른 항아리 모양이, 50년 뒤에는 아무도 따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베낄 수 없는 모양이라 2016년에는 생김새 자체가 상표로 등록됐다.

CH. 5

단지 용기가 문화유산 후보에 올랐다

회사 이름만 바뀌었다

50년 동안 바뀐 것은 통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었다. 1982년 2월, 대일유업은 사명을 빙그레로 바꿨다. 1974년에 만든 단지 모양은 그대로 남았다.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이 단지 우유를 집는 장면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2004년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30여 개 나라 진열대에도 같은 모양이 올라가 있다.

바나나맛우유 누적 판매량
95억
2023년까지 누적 수치다. 지금도 하루 100만 개 안팎이 팔리고, 국내 가공유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2024년 11월, 빙그레는 단지 용기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혔다. 등록 대상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난 근현대 유산이다. 1974년 대일유업 개발팀이 고른 것은 진열대에서 눈에 띌 통 모양이었는데, 50년 뒤 문화유산 후보로 올라간 것은 우유가 아니라 통이다.

— 끝 —
카톡 한 줄

바나나맛우유 통이 뚱뚱한 건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본뜬 것이다. 위아래를 붙여 만들어야 해서 지금도 전 세계에서 빙그레만 만든다.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 영상으로 보기
출처 (18)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