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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의학·신체· 공유받은 글

헨리는 몰랐고 손은 알았다

1962년, 밀너가 헨리 앞에 별 그림을 놓았다. 헨리는 사흘째 처음 본다고 했다. 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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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헨리의 손이 사흘째 정확해졌다

사흘째, 그는 그 별을 처음 본다고 했다

1962년. 브렌다 밀너가 헨리 앞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종이에는 두 겹 선으로 그려진 별이 하나 있었다. 가림막 때문에 종이도, 연필을 쥔 손도 거울 속에서만 보였다. 헨리는 거울만 보면서 두 선 사이를 따라 그려야 했다.

헨리는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흘 동안 되풀이한 검사였다. 그런데 연필은 첫날보다 선 안쪽을 정확히 따라갔다.

헨리의 기억은 30초에서 끊겼다. 손은 끊기지 않았다.

CH. 2

헨리는 뇌 수술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헨리는 스물일곱에 조립 라인을 떠났다

헨리 몰레이슨이 밀너의 책상 앞에 앉게 된 이유는 9년 전에 있었다.

헨리는 1926년 코네티컷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작은 발작이 시작됐고, 열여섯 살을 넘기면서 의식을 잃는 큰 발작이 왔다. 스물일곱이 되자 전동기 코일을 감던 조립 라인 일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약을 최대로 올려도 발작은 잡히지 않았다.

헨리는 뇌 수술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수술 중에 피가 안경에 튀면 어쩌나 싶어 접었다고, 뒷날 헨리 자신이 말했다. 스물일곱의 헨리는 수술을 하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 있었다.

1953년
기억이 뇌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지도에 없었다
지금
해마는 기억 교과서 첫 장에 나온다

1953년의 뇌 수술은 지도 없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발작을 멈추려면 발작이 시작되는 자리를 도려내야 했고, 무엇이 함께 딸려 나오는지는 열어봐야 알았다.

CH. 3

스코빌이 헨리의 관자엽 안쪽을 들어냈다

1953년, 헨리가 하트퍼드 병원에 들어갔다

헨리의 가족이 만난 사람은 하트퍼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윌리엄 비처 스코빌이었다. 약으로는 더 어쩔 수 없어, 뇌 수술로 발작을 멈출 수 있는지 물으러 간 걸음이었다.

스코빌이 스물일곱 살 헨리에게 내놓은 것은 실험적인 수술이었다. 스코빌은 같은 절제를 앞서 정신질환자에게만 해봤다. 뇌전증 환자가 스코빌의 절제를 받는 것은 헨리가 처음이었다.

헨리와 가족은 동의했다. 발작을 멈출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솔직히 실험적인 수술이었다.
윌리엄 비처 스코빌·브렌다 밀너, 1957년 논문 — 헨리에게 한 수술을 두고

스코빌이 들어낸 것은 양쪽 관자엽 안쪽, 엄지손가락만 한 덩어리 둘이었다. 해마 앞부분과 편도체가 함께 딸려 나왔다.

발작은 잦아들었다. 스코빌이 노린 것은 거기까지였다.

수술 뒤 헨리는 방금 인사한 사람의 이름을 곧바로 잃었다. 1955년 검사에서 지능 지수는 112, 기억 지수는 67이 나왔다. 머리는 그대로였고 기억만 빠져나갔다.

CH. 4

헨리는 자기가 배운 줄을 몰랐다

밀너가 사흘 동안 같은 종이를 내밀었다

1955년부터 브렌다 밀너가 헨리를 검사했다. 몬트리올에서 하트퍼드까지 이후 30년 동안 여러 번 오갔고, 밀너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헨리에게는 첫 만남이었다.

1962년, 밀너는 방향을 바꿨다. 헨리가 무엇을 못 하는지 재는 대신, 지시를 한 번 듣고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같은 것을 여러 번 하면 익힐 수 있는지 보기로 했다. 거울 그리기를 고른 이유 하나는 검사 도구를 하트퍼드까지 들고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사흘 동안 되풀이됐다. 첫날 헨리의 연필은 별 선 밖으로 자꾸 빠져나갔다. 이튿날 오류가 줄었다. 사흘째 그려진 곡선은 기억이 멀쩡한 사람의 학습 곡선과 같은 모양이었다. 헨리는 매번 처음 하는 검사라고 했다.

헨리는 자기가 잘해낸 것에 스스로 놀랐다. 전에 해본 적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
브렌다 밀너, 자전 기록 — 사흘간의 거울 그리기 검사를 두고

헨리의 손은 배웠고, 헨리는 배운 줄을 몰랐다. 기억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겪은 일과 아는 사실을 담는 기억은 해마를 지나가고, 몸이 익히는 기억은 다른 길로 간다. 1962년 이전까지 학자들은 기억을 하나의 능력으로 다뤘다.

헨리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수술을 받았다는 것, 기억을 잃었다는 것까지 알았다. 1992년, 헨리가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내일은 무엇을 하겠느냐는 물음에, 헨리는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답했다.

CH. 5

헨리 몰레이슨의 이름은 55년 만에 나왔다

H.M. 두 글자가 이름을 되찾았다

헨리 몰레이슨은 수술 뒤 55년을 더 살았다. 2008년 12월 2일, 코네티컷의 요양 시설에서 여든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이 논문 밖으로 나온 것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세상이 헨리를 H.M. 두 글자로만 알던 세월
55
1953년 수술부터 2008년 세상을 떠난 날까지

100명이 넘는 연구자가 헨리를 검사했다. 검사실 문이 열릴 때마다 헨리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다. 헨리가 살아 있는 동안, 기억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갈래라는 사실이 교과서 안으로 들어갔다. 별 그림 위에서 정확해지던 손이 첫 증거였다.

안경에 피가 튈까 봐 뇌 수술 의사를 접었다던 헨리 몰레이슨은, 사람의 기억을 가장 많이 알려 준 사람이 됐다.

— 끝 —
카톡 한 줄

매일이 처음이던 헨리의 손이, 기억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걸 별 그림 위에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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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