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늦게 나온 사이다만 남았다
1950년 5월 9일 서울 갈월동, 성이 다 다른 일곱 사람이 세운 공장에서 사이다 첫 병이 나왔다. 47일 뒤 전쟁이 터졌다.
전쟁 47일 전에 첫 병이 나왔다
1950년 5월 9일, 서울 갈월동
성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 일곱 사람이 세운 공장에서 사이다 첫 병이 나왔다. 회사는 그날을 창립기념일로 삼았다.
한국에 사이다 공장이 처음 생긴 해는 1905년이다. 1950년의 사이다는 마흔다섯 살 먹은 물건이었고, 해방 뒤 서울에도 인천에도 평양에도 각자의 사이다가 있었다.
칠성사이다는 가장 늦게 나온 축이었다. 76년이 지난 지금, 1950년에 팔리던 사이다 가운데 편의점 냉장고에 남은 이름은 칠성사이다다.
박운석은 평양에서 사이다를 만들었다
1905년 인천, 해방 뒤 갈월동
한국의 첫 사이다는 1905년 인천 신흥동에서 나왔다. 일본인 히라야마 마쓰타로가 세운 인천탄산수제조소가 만든 별표 사이다였다. 사이다라는 말은 본래 사과로 담근 술을 뜻하는데, 탄산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1945년 해방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공장은 주인이 바뀌었다. 서울에는 서울사이다, 인천에는 스타사이다, 평양에는 금강사이다가 있었다. 사이다는 지역마다 따로 있는 물건이었고, 전국을 잡은 이름은 없었다.
일본인이 두고 간 공장들이 주인을 바꾸고 몇 해 뒤, 서울 용산 갈월동에 일곱이 모였다. 일곱 가운데 박운석은 평양 금강사이다 공장을 돌리던 공장장이었다.
평양에서 사이다를 만들던 박운석은 서울에서 다시 사이다를 만들기로 했다. 최금덕을 비롯한 나머지 여섯이 함께 이름을 올렸고, 일곱의 성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일곱은 빚까지 나눠 지기로 했다
1949년 12월 15일, 서울
일곱은 제품 이름을 성씨에서 따오기로 했다. 성이 일곱 개라 칠성(七姓)이었다. 최종 이름은 성씨 성(姓) 대신 별 성(星)을 넣은 칠성(七星)이 됐다. 오래 가자는 뜻이었다.
1949년 12월 15일, 일곱은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를 세웠다. 상호에 박힌 합명(合名)은 이름을 합친다는 뜻이다.
합명회사는 회사 재산으로 빚을 다 갚지 못하면 사원들이 각자 자기 재산으로 연대해 갚는 회사다. 일곱 성씨는 상표이기 전에, 서로의 빚을 나눠 진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1950년 5월 9일, 갈월동 공장에서 칠성사이다 첫 병이 나왔다. 색소도 인공향료도 넣지 않고 레몬과 라임에서 뽑은 향을 썼다. 서울과 인천의 사이다가 이미 자리를 잡은 시장에서, 일곱은 마지막 주자였다.
첫 병이 나온 지 47일 뒤인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됐다. 갈월동 공장은 멈췄다.
설탕값이 네 배로 뛰었다
1953년 재가동, 1962년 설탕
1953년, 일곱은 갈월동 공장을 다시 돌렸다. 일본에서 들여온 설비가 병을 채웠다. 1957년에는 미8군 위생시험에 합격해 군납을 시작했다.
회사를 흔든 다음 고비는 전쟁이 아니라 설탕이었다. 1962년, 외환이 모자란 정부가 설탕을 수입 자동 승인 품목에서 허가 품목으로 바꿨다. 들어오는 양이 줄자 값이 뛰었다. 설탕값은 1962년 톤당 65달러에서 이듬해 277달러까지 올랐다.
정부는 청량음료 회사들에 설탕을 절반만 쓰라고 권했다. 라이벌 서울청량음료는 권유를 따랐다. 설탕과 사카린을 반씩 넣은 반탕 사이다가 나왔다.
동방청량음료는 따라가지 않았다. 직원들이 제당공장 앞에서 밤을 새우고 아는 사람을 모두 동원해 설탕을 구해 왔다. 칠성사이다는 설탕만 넣은 순탕 사이다로 계속 나왔다. 값이 네 배로 뛴 해에 단맛은 그대로였다.
1964년, 동방청량음료가 서울청량음료를 인수했다. 1950년에 제일 늦게 나온 사이다가, 해방 뒤 시장을 나눠 갖던 회사를 사들였다.
창립기념일은 지금도 5월 9일이다
1974년, 그리고 76년째
1966년, 칠성사이다는 국내 음료 가운데 처음으로 수출길에 올랐다. 회사 이름은 1967년 한미식품공업, 1973년 칠성한미음료로 바뀌었고, 1974년 롯데가 인수해 롯데칠성음료가 됐다. 회사 이름은 세 번 바뀌었고 사이다 이름은 1950년부터 그대로다.
1905년 인천에서 시작된 별표 사이다도, 해방 뒤 서울을 잡았던 서울사이다도 지금 편의점 냉장고에서는 찾기 어렵다. 1950년 5월 9일 갈월동에서 나온 사이다는 남았다.
롯데칠성음료의 창립기념일은 지금도 5월 9일이다. 회사를 세운 1949년 12월 15일이 아니라, 성이 다른 일곱 사람이 만든 사이다가 처음 나온 날이다.
가장 늦게 나온 칠성사이다가 살아남은 건, 설탕값이 네 배로 뛴 해에 단맛을 줄이지 않은 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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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워치 [결정적 한끗]① 칠성사이다는 '사이다'가 아니다 — Ch.1·Ch.2 배경의 뼈대. 일본인이 인천 신흥동에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세우고 별표 사이다를 만든 것, '1930년대에는 전국에 58개의 사이다 공장이 있었으며 대부분 일본인 경영', 사이다 어원(사과 발효주)과 '탄산음료로 통용하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 박운석이 평양 금강사이다 공장장이었다는 이력. ⚠️ 이 기사만 설립 연도를 1947년으로 적어 다수 자료(1949년 12월 15일)와 갈린다 — 본문은 다수 표기를 따랐다. ⚠️ 창업자 이름 표기는 이 기사가 '마쓰다로' 인데 인천 지역 언론이 원 한자(平山松太郞)와 함께 '마쓰타로' 로 적어, v3 본문은 원음 표기인 '마쓰타로' 로 고쳤다
- 비즈워치 [결정적 한끗]⑤ '설탕 고집' 지킨 칠성사이다 — Ch.4 설탕 대목 전체의 1차 근거. 1962년 정부가 '수입 자동 승인 품목이었던 설탕을 허가 품목으로 변경', '설탕 가격이 톤당 65달러(1962년)에서 277달러(1963년)로 폭등', '정부는 청량음료 업계에게 설탕을 50%만 사용하라고 권유', 서울청량음료의 '설탕과 사카린을 반씩 사용한 반탕 사이다', 동방청량음료 직원들이 '제당공장 앞에서 밤을 지새우고, 인맥을 총동원해 설탕을 확보' 해 순탕 사이다를 유지한 것, '1964년 동방청량음료가 서울청량음료를 인수'. Ch.2 의 지역별 사이다 목록도 이 기사. ⚠️ 지역별 나열은 해방 직후 구도라, v3 은 Ch.1·Ch.2 에서 '해방 뒤' 로 시점을 고정하고 Ch.3(1950년 5월 서울 시장) 문장에서는 평양을 뺐다
- 스마트비즈 [스테디Biz] 사이다의 기준이 된 이름 '칠성사이다' (2026-02) — Ch.3 결말·Ch.4 도입의 근거.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공장이 파괴됐고 창업자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1953년 휴전 이후 재건에 나선 이들은 일본에서 최신 혼합기를 도입해 품질을 개선하며 시장에 복귀했다', '1960년대 원당 국제 시세 급등으로 설탕을 줄이고 사카린을 혼합한 반탕 사이다가 유행했지만, 칠성사이다는 100% 설탕을 사용하는 순탕 사이다를 유지'. 순탕 유지 서술이 비즈워치와 독립적으로 일치한다. ⚠️ '공장 파괴'·'창업자 피난'·'휴전 이후 재건' 세 대목은 이 기사 단독 서술이라 v3 본문에서 모두 뺐다 — Ch.3 은 4계통 공통분모인 '멈췄다' 까지만, Ch.4 는 월·계기를 빼고 '1953년' 연도만 적었다
- 나무위키 롯데칠성음료 — 전쟁 중 조업 중단·재가동 시점의 교차 근거. '창립 첫 해부터 칠성사이다를 만들었으나 6·25 전쟁으로 조업이 중단됐다가, 1951년 서울 수복 후 1953년 3월 공장 운영 재개, 한 달 뒤 일본제 반자동 신설비(18ppm) 도입'. ⚠️ 재가동을 1953년 3월로 적어 스마트비즈의 '휴전 이후'(7월 이후)와 넉 달 어긋난다. 2차 출처라 연월·설비 사양을 본문에 쓰지 않고, v3 은 두 계통 어느 쪽과도 충돌하지 않는 '1953년, 일곱은 갈월동 공장을 다시 돌렸다' 로 연도만 적었다
- 파이낸셜뉴스 [장수브랜드 탄생비화] 6·25전쟁 직전에 나와 국민과 함께해온 '칠성사이다' — 전쟁 중 조업 중단·1953년 3월 재개 서술의 또 다른 교차 근거. 나무위키와 같은 계통이라 v3 도 월을 적지 않았다. 직접 fetch 는 403 이라 검색 결과 요약으로만 확인했다
- 한국식품의약신문 '우리식품 100년사' — 칠성사이다. Ch.2·Ch.3 창립 대목의 근거. '1949년 12월 15일 최금덕, 박운석, 방계량, 주동익, 정선명, 김명근, 우상대 등 7명의 주주가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 설립', 이름 유래 원문('각자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칠성(七姓)이라 하되, 회사의 영원한 번영을 의미하는 별 성(星)자를 넣어 칠성(七星)으로 결정'), 1950년 5월 9일 출시, 초기 제품이 '무색소, 무인공향료' 로 '레몬과 라임에서 추출한 천연 향' 을 쓴 것, 사명 변경 연혁. ⚠️ 설립일 표기는 자료마다 네 갈래다 — 다수(이 기사·아시아에이·미주중앙일보·롯데 공식 블로그)가 1949-12-15, 롯데 공식 연혁 계열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50년 5월, 비즈워치 ①편은 1947년. 본문은 다수 표기를 따랐고, Ch.5 페이오프는 설립일이 아니라 롯데 블로그의 인과 서술('창립기념일도 새 제품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1950년 5월 9일로 정했다')에 걸려 있어 어느 표기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 7인 가운데 표기가 갈리는 이름이 있어(방계량/장계량, 정선명/정성면, 김명근/김명금) 본문은 최금덕·박운석 둘만 실명으로 썼다
- 아시아에이 브랜드스토리 — 칠성사이다. Ch.2 장소의 근거. '1949년 12월 15일 최금덕, 박운석, 방계량, 주동익, 정선명, 김명근, 우상대 등 7명이 주주가 되어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를 설립'. 7인 명단·이름 유래·사명 변경이 한국식품의약신문과 일치한다. ⚠️ 번지(갈월동 9번지)는 뒷받침 출처를 붙이지 못해 v2 에서 삭제하고 '서울 용산 갈월동' 까지만 적었다
- 롯데 공식 블로그 — 70년간 사랑받은 칠성사이다 이야기(회사 자체 기록). Ch.1·Ch.4·Ch.5 의 근거. '1949년 12월 15일 7명의 주주가 설립한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 '1950년 5월 9일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날을 회사의 창립기념일로 정했습니다', '1957년 미8군 위생시험에 합격해 군납을 시작', '1966년 국내 음료업계 최초 해외 수출'. Ch.5 마지막 줄의 대비(설립 1949년 12월 15일 vs 창립기념일 1950년 5월 9일)가 여기서 나온다
- 롯데칠성음료 공식 회사소개 — 창사일을 1950년 5월 9일로 표기. Ch.5 의 '창립기념일은 지금도 5월 9일' 을 현재 시점에서 뒷받침한다. ⚠️ 회사 공식 표기는 창사=1950-05-09 이고 설립일 1949-12-15 는 언론·업계 자료 다수 표기다. 본문은 두 날짜를 대립시키지 않고 '회사를 세운 날' 과 '사이다가 처음 나온 날' 로만 구분했다
- EVOLOG 롯데칠성음료 연혁과 역사 — 설립 표기가 자사 자료 안에서도 갈린다는 근거. 롯데 자사 연혁 계열은 '1950년 5월 모태인 동방청량음료 합명회사로 설립' 이라 적어 공식 블로그(1949년 12월 15일 설립)와 다르고, 창업 구도도 '갈월동에서 빵과 음료수를 팔던 최금덕과 장계량은 평양 금강사이다 공장장이던 박운석을 합류시켜' 로 적어 짝짓기가 다르다. ⚠️ v3 은 이 어긋남 때문에 만난 해와 '누가 누구를 합류시켰나' 를 본문에서 빼고 '갈월동에 일곱이 모였다' 는 집합 서술로만 적었다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법제처) — 합명회사 사원의 의무와 책임. Ch.3 스파이크의 법적 근거. 상법 제212조 '회사의 재산으로 회사의 채무를 완제할 수 없는 때에는 각 사원은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 ⚠️ 현행 상법은 1962년 제정이라 1949년 당시 조문 번호와 다르다 — 본문은 연도·조문 번호를 적지 않고 합명회사라는 형태가 무엇인지만 서술했다. 상호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 자체가 형태의 근거다. ⚠️ 동방청량음료에 실제 변제 사태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어 Ch.3 부제는 '나눠 지기로 했다' 라는 지위 서술로 뒀다
- CaseNote 상법 제212조(사원의 책임) — Ch.3 스파이크 조문 원문. '회사의 재산으로 회사의 채무를 완제할 수 없는 때에는 각 사원은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
- 뉴시스 '초당 16캔꼴' 롯데칠성 칠성사이다, 74년간 375억캔 팔렸다(2024-11-14) — Ch.5 숫자 카드의 원 발표 시점 근거. '375억캔(250㎖ 캔 환산, 2024년 10월말 집계 기준)'
- 뉴스투데이 — 75돌 맞은 '칠성사이다' 누적 375억캔 팔렸다(2025-03). Ch.5 숫자 카드의 교차 근거. '250㎖ 캔 제품 기준으로 2024년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375억캔을 돌파했다'
-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 Sugar Prices (May 29 – June 6, 1963) — Ch.4·share_line 의 '네 배' 를 받치는 독립 교차 근거. 1963년 5월 국제 설탕값이 파운드당 12센트 초과로 '1년 전의 4배 이상, 40여 년 만의 최고치'. 톤당 65달러=2.95센트/lb, 277달러=12.56센트/lb 환산과 맞아떨어진다. ⚠️ 277달러는 1963년 고점이고 연평균이 아니어서 본문은 '이듬해 277달러까지 올랐다' 로 적고 '국제' 라는 수식어를 뺐다
- Winton — The Sweet and Sour History of Sugar Prices. 1963년 국제 설탕 연간 고점 11.83센트/lb, 연평균 종가 7.52센트/lb. 277달러가 고점이라는 판단의 근거
- 미주중앙일보 [한국 장수 브랜드] 칠성사이다, 성씨 다른 7명이 만나 '칠성' — 박운석 이력의 교차 근거('일본에서 청량음료학을 전공', '40년대 평양의 금강 사이다 공장장'). ⚠️ 최금덕을 '평양에서 피복 공장을 하던' 사람으로 적어 다른 자료('갈월동에서 빵과 음료수를 팔던')와 정면으로 갈린다 — 본문은 최금덕의 직업 서술을 쓰지 않는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롯데칠성음료 — 사명 변경 연혁의 교차 근거. '1967년에 동방청량음료에서 한미식품공업㈜, 1973년에는 칠성한미음료㈜로 회사명을 변경', '1974년 11월에 롯데제과에 인수'. ⚠️ 설립 시점을 '1950년 5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세워진 동방청량음료' 로 적어 1949년 12월 15일 표기와 갈린다
- 위키백과 — 칠성사이다 / 롯데칠성음료. 사명 변경 연혁('1950년 동방청량음료, 1967년 한미식품공업, 1973년 칠성한미음료 등을 거쳐 1974년 12월부터 롯데칠성음료'), 1950년 5월 9일 출시, 칠성(七姓)에서 칠성(七星)으로의 이름 유래, 그리고 Ch.3 결말의 네 번째 교차 근거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달 만에 생산이 중단'
- 인천in — 1905년, 인천 개항장에 등장한 '별표 사이다'. Ch.1·Ch.2 의 1905년 대목을 비즈워치 밖에서 받치는 지역 언론 기록.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가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서 창업', '성인표(星印標) 사이다 … 별 모양 상표로 별표 사이다'. v3 이 인명 표기를 '마쓰타로' 로 고친 근거
- 나무위키 사이다 — Ch.1·Ch.5 의 '남은 이름은 칠성사이다' 를 받치는 근거. '지역별로 생산·유통되던 사이다들(천연사이다를 제외하고는)이 전부 단종'. 예외인 일화 천연사이다는 1976년 출시라 1950년 당시 제품이 아니어서 본문 주장과 충돌하지 않는다. 본문이 '단종' 대신 '찾기 어렵다' 로 적은 것도 이 때문
- 세계일보 — '한국 사이다 원조' 인천 사이다, 120년 만에 부활(2025-05). Ch.1·Ch.5 의 '편의점 냉장고에 남은 이름' 한정어가 필요한 이유. 인천 청년기업이 별표사이다를 모티브로 신제품을 냈으나 별개 회사의 신제품이고 유통이 온라인·신포시장 인근 카페 십여 곳이라, 본문 주장은 '편의점 냉장고' 한정 안에서만 선다
- 국가기록원 6·25전쟁 연표 — 전쟁 발발일 1950년 6월 25일. Ch.1 number_card '47일' 검산의 기준(5월 잔여 22일 + 6월 25일)
- 한국식품산업협회 웹진(2019.05) '식품으로 보는 역사' — Ch.4 페이오프의 교차 근거. '1905년 인천에서 일본인이 설립한 인천탄산수제조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다 제조 회사', 칠성사이다 이름이 '창립자 일곱 명의 성(姓)에서 비롯', '동방청량음료는 1964년 서울사이다를 제조하던 서울청량음료를 인수하며 확장'. 1964년 인수가 비즈워치와 업계 협회 두 계통에서 일치해 Ch.4 스파이크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