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한국 현대사· 공유받은 글

아들을 잃고 훈장을 돌려줬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화성. 컨테이너로 쌓은 3층 건물에서 유치원생 19명이 잠든 채 못 나왔다.

↓ 스크롤
CH. 1

일곱 살들의 여름 수련회였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1시 30분, 화성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3층 건물에서 불이 났다. 그 안에는 유치원생들이 잠들어 있었다.

잠든 채 못 깨어난 아이들
19
인솔 교사와 강사까지, 하룻밤에 스물세 명이 숨졌다.

일곱 살 안팎이었다. 여름 수련회 첫날 밤이었다.

CH. 2

은메달리스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순덕은 시상대에 서 본 사람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필드하키 대표팀이 은메달을 땄다. 김순덕은 대표팀의 주축이었다.

나라는 김순덕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걸어 줬다.

1995년
가족과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몇 해 뒤
아이들에게 한국을 가르치려 돌아왔다

돌아온 김순덕은 1999년 여름, 장남 도현을 유치원 수련회에 보냈다. 화성 바닷가의 씨랜드였다.

CH. 3

김순덕은 답을 알아야 했다

새벽,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C동 301호의 모기향 불을 발화 지점으로 추정했다. 유족은 누전 가능성도 함께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발화 지점이 어디였든, 불은 삽시간에 건물을 삼켰다. 컨테이너를 조립한 가건물은 잘 타는 자재로 채워져 있었다.

가장 가까운 소방서까지
9km
정규 소방관은 한 명이었고, 뿌릴 물도 모자랐다.

새벽이 오기 전에 유치원생 열아홉 명과 어른 넷이 숨졌다. 김순덕의 아들 도현도 돌아오지 못했다.

장례를 치른 김순덕은 한 가지를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컨테이너로 쌓은 건물이 아이들의 잠자리가 되었는가.

CH. 4

건물은 뇌물 위에 서 있었다

답은 콘크리트 한 층 위에 있었다

씨랜드는 콘크리트 1층 위에 컨테이너 쉰두 개를 얹어 만든 3층 가건물이었다. 청소년수련원 허가가 그렇게 났다.

허가가 나는 과정에 뇌물이 오갔다. 시공과 감리를 맡은 쪽에 돈이 건네졌고, 화성군 공무원들은 눈을 감았다. 군수까지 얽혀 있었다.

안전 검사는 그렇게 건너뛰어졌다. 컨테이너로 쌓은 건물이 아이들의 잠자리가 된 이유였다.

김순덕은 답과 책임을 요구했다. 정부의 사고 수습은 부실했고, 국무총리 면담마저 거절당했다.

CH. 5

김순덕은 훈장을 나라에 돌려줬다

1999년 가을, 김순덕은 한국을 떠났다

씨랜드 화재로부터 넉 달 뒤, 인천 인현동의 한 호프집에서 또 불이 났다. 청소년 쉰여섯 명이 숨졌다.

인현동에서도 아이들이 죽자, 김순덕은 더 기다리지 않았다.

김순덕은 서울올림픽 은메달과 함께 받은 훈장을 모두 나라에 돌려줬다. 올림픽 시상대에 섰던 사람이 나라가 준 상을 되돌려준 것이다.

김순덕은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나라가 걸어 준 훈장은, 나라에 남았다.

— 끝 —
카톡 한 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나라가 준 훈장을 돌려준 건, 씨랜드에서 아들을 잃고도 끝내 답을 못 들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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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