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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에서 원숭이가 사라졌다

1954년 서울, 진로 병에 30년 붙어 있던 원숭이가 사라졌다. 빈자리에 두꺼비가 앉았다.

↓ 스크롤
CH. 1

30년 만에 원숭이가 사라졌다

원숭이가 사라진 날

1954년, 서울 신길동. 진로 소주 병에서 원숭이가 사라졌다.

30년을 한자리에 붙어 있던 그림이었다. 빈자리에는 두꺼비 한 마리가 앉았다.

원숭이가 진로 병에 붙어 있던 기간
30
1924 ~ 1954
CH. 2

평안도에선 원숭이가 복이었다

1924년, 평안남도 용강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 진지동. 장학엽이 진천양조상회를 세웠다.

장학엽이 붙인 소주 이름은 진로였다. 참 진(眞) 자에 이슬 로(露) 자. 소주를 내릴 때 방울방울 맺히는 맑은 이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장학엽은 술병에 원숭이를 그려 넣었다. 서북 지방에서 원숭이는 복을 부르는 동물이었다.

원숭이 상표가 처음 붙은 해
1924
평안남도 용강, 진천양조상회

용강 술도가에서 원숭이 상표는 30년을 갔다. 평안도 사람들에게 원숭이 그림은 반가운 얼굴이었다. 강 하나만 건너지 않았다면 원숭이는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CH. 3

장학엽이 원숭이를 뗐다

원숭이를 뗀 손

해방이 오고 한국전쟁이 지나갔다. 장학엽은 고향 용강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4년, 장학엽은 서울 신길동에 서광주조주식회사를 세웠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진로를 다시 세우기로 했다.

남은 문제는 술병 그림이었다. 30년을 함께한 원숭이를 그대로 붙일 것인가. 장학엽은 원숭이를 뗐다.

장학엽이 남에서 진로를 다시 연 해
1954
서울 신길동, 서광주조
CH. 4

원숭이가 강 건너 뒤집혔다

복이 뒤집힌 자리

장학엽이 원숭이를 뗀 이유는 남쪽에 있었다. 평안도에서 복이던 원숭이가, 남쪽 사람들에게는 복이 아니었다.

같은 원숭이였다.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뜻이 뒤집혔다. 서북에서 반갑던 얼굴이 남쪽에서는 반갑지 않았다.

장학엽이 원숭이 자리에 앉힌 것은 두꺼비였다. 남쪽에서 두꺼비는 복과 재물, 강한 번식력과 장수를 부르는 영물이었다.

30년을 붙어 있던 원숭이가 1954년 사라진 까닭이 여기 있었다. 원숭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복을 읽는 지도가 남과 북에서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CH. 5

두꺼비는 두 번째 얼굴이었다

지금도 앉아 있는 두꺼비

1954년 이후로 진로 병에는 두꺼비가 앉아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두꺼비는 그대로다.

두꺼비가 진로 병을 지켜 온 세월
70
1954 ~

두꺼비는 처음부터 진로의 얼굴이 아니었다. 고향 용강을 떠나 남쪽에서 진로를 다시 연 장학엽이 고른 두 번째 얼굴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비운 소주병 위의 두꺼비는, 원숭이를 평안도에 두고 강을 건너온 자리에서 시작됐다.

— 끝 —
카톡 한 줄

진로 두꺼비가 원래는 원숭이였는데, 원숭이가 북에선 복이고 남에선 아니라 강 건너며 두꺼비로 바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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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