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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글로벌 휴머니티· 공유받은 글

이레나가 이름을 땅에 묻었다

1945년 봄, 바르샤바. 사과나무 아래에서 유리병이 나왔다. 아이 2,500명의 진짜 이름이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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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이레나가 사과나무 아래를 팠다

땅속의 이름들

1945년 봄, 바르샤바. 이레나 센들레르가 사과나무 아래를 팠다. 흙 속에서 유리병이 나왔다.

병 안에는 젖은 종이쪽이 접혀 있었다. 아이 2,500명의 진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리병 속
2,500개의 이름
왜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름을, 땅속에 숨겨 두었나

이름을 지우면 아이는 살았다. 그런데 센들레르는 지운 이름을 굳이 종이에 적어 땅에 묻었다.

CH. 2

센들레르는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1940년, 바르샤바. 독일 점령군이 도시 한복판에 높은 담장을 세웠다. 유대인 수십만 명이 담장 안에 갇혔다. 안에서는 굶주림과 병으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이레나 센들레르는 폴란드의 사회복지사였다. 전염병 방역 담당이라는 명목으로 통행증을 받아, 담장 안팎을 드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폴란드인이었다.

담장 안에서 죽어 가는 아이들을 본 뒤, 센들레르는 유대인을 돕는 지하조직 젤고타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담장 밖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생후 5개월 된 엘주비에타 피초프스카는 목수의 연장통에 담겨 담장을 넘었다. 울지 않도록 약을 먹인 아기였다. 이렇게 빠져나온 아이가 2,500명에 이르렀다.

게토로 들어갈 때
방역 통행증 한 장
게토에서 나올 때
연장통, 자루, 관 속
CH. 3

센들레르는 진짜 이름을 적었다

사라지지 않게

담장을 넘은 아이들에게는 새 폴란드 이름과 위조 신분증이 주어졌다. 수녀원, 고아원, 폴란드 가정에 숨었다. 살아남으려면 태어날 때 받은 유대인 이름을 지워야 했다.

센들레르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아이 하나하나의 진짜 이름과 부모 이름, 숨은 곳을 암호로 적어 유리병에 넣었다. 그리고 젤고타 동료의 정원, 사과나무 아래에 묻었다.

발각되면 사형인 명단이었다. 아이들을 살린 것은 가짜 이름이었지만, 센들레르가 땅에 묻은 것은 언젠가 부모에게 돌려보낼 진짜 이름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종교도 국적도 묻지 않고 건져 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배우며 자랐습니다.
이레나 센들레르, 2007년 폴란드 상원에 보낸 편지
CH. 4

게슈타포가 센들레르를 잡아갔다

이름을 지킨 밤

1943년 10월 20일, 게슈타포가 센들레르를 체포해 파비악 감옥에 가뒀다. 아이들의 진짜 이름을 쥔 사람을 잡은 것이다.

며칠간 이어진 고문으로 한쪽 다리와 발이 부러졌다. 센들레르는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동료가 누구인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유리병의 존재도 발설하지 않았다.

센들레르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1944년 2월,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날, 젤고타가 게슈타포 요원을 매수했다. 센들레르는 살아났고, 거리의 게시판에는 처형자 명단에 이름이 붙었다.

전쟁이 끝나고, 센들레르는 사과나무 아래 유리병을 파냈다. 명단은 젖은 채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름 옆에 적힌 부모들은 대부분 트레블링카에서 죽어 있었다.

명단은 살아남았다. 명단이 돌려보내려던 가족은 살아남지 못했다.

CH. 5

이름은 종이 위에 남았다

돌아갈 집이 없어도

파낸 명단을 들고 센들레르는 살아남은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돌아갈 부모가 남아 있는 아이는 드물었다. 많은 아이는 새로 얻은 폴란드 이름 그대로 살아갔다.

유리병이 지킨 것은 아이들을 살린 가짜 이름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 받은 진짜 이름, 아이 하나하나가 원래 누구였는가였다.

이레나 센들레르는 1965년 야드바솀에서 '열방의 의인'이 되었고, 2008년 바르샤바에서 98세로 눈을 감았다. 유리병 속 2,500개의 이름은, 돌아갈 집을 잃은 뒤에도 남았다.

— 끝 —
카톡 한 줄

아이 2,500명을 게토에서 빼낸 여자가 목숨 걸고 지킨 건, 아이들을 살린 가짜 이름이 아니라 원래 이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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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