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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과학·예술· 공유받은 글

버리려던 접시가 세균을 지웠다

1928년 9월, 런던. 플레밍이 휴가에서 돌아와 쌓인 배양접시를 마주했다. 그 하나가 이상했다.

↓ 스크롤
CH. 1

곰팡이 둘레만 세균이 사라졌다

안 씻고 떠난 접시

1928년 9월,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알렉산더 플레밍이 2주 휴가에서 돌아왔다. 실험대에는 떠나기 전 쌓아둔 세균 배양접시가 그대로였다.

쌓인 접시 하나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원래는 버릴 접시였다. 그런데 곰팡이 둘레로 세균이 녹아 사라진 반원이 나 있었다.

CH. 2

플레밍은 세균만 죽일 것을 찾았다

10년 전, 야전병원

10년을 거슬러, 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야전병원. 군의관 플레밍은 부상병들이 총상 자체가 아니라 상처 속 감염으로 죽는 것을 지켜봤다.

당시 소독약은 상처 겉만 씻었다. 깊이 파고든 세균은 못 잡고, 오히려 감염과 싸우는 백혈구를 함께 죽였다. 플레밍은 몸을 해치지 않고 세균만 죽이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1922년, 플레밍은 눈물과 콧물 속에서 세균을 녹이는 물질을 찾아냈다. 라이소자임이라 불렀다. 다만 약한 세균만 잡았고, 정작 사람을 죽이는 독한 균 앞에서는 무력했다.

CH. 3

플레밍은 접시를 버리지 않았다

버리지 않은 손

다시 1928년 9월의 접시 앞. 곰팡이가 핀 배양접시는 실패한 실험이었고, 대부분의 연구자는 오염된 접시를 그대로 버렸다.

플레밍은 버리지 않았다. 곰팡이 둘레의 빈 자리가, 6년 전 라이소자임이 세균을 녹이던 자리와 똑같았다. 플레밍은 곰팡이를 떼어내 따로 길렀다.

찾지 않던 것을 찾게 될 때가 있다.
알렉산더 플레밍

곰팡이는 푸른곰팡이속(페니실륨)이었다. 접시 아래층 실험실에서 포자가 날아든 것으로 보였다. 플레밍이 곰팡이 우려낸 국물에 세균을 넣자 세균이 죽었다. 1929년, 플레밍은 세균을 죽인 성분에 곰팡이의 이름을 따 '페니실린'이라 붙였다.

CH. 4

접시는 10년 넘게 잊혔다

발견과 약 사이, 13년

문제는 플레밍이 화학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페니실린은 곰팡이 국물에서 아주 조금 나왔고, 며칠이면 힘을 잃고 사라졌다. 플레밍은 순수한 페니실린을 뽑아내지 못했다.

1929년 플레밍이 낸 논문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페니실린은 실험 노트 속 곰팡이 메모로 10년 넘게 묻혀 있었다.

접시를 항생제로 바꾼 것은 플레밍이 아니었다. 1939년 옥스퍼드에서 하워드 플로리와 언스트 체인이 잊힌 논문을 다시 꺼내, 곰팡이에서 순수한 페니실린을 뽑아냈다. 1941년 2월, 첫 환자였던 경관 앨버트 알렉산더는 주사 하루 만에 나아졌다 — 페니실린이 바닥나기 전까지.

안 씻고 나갔던 접시 속 곰팡이가, 발견 1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의 몸속 세균과 싸웠다.

CH. 5

곰팡이 접시가 부상병을 살렸다

안 씻은 접시의 값

1944년, 페니실린은 대량 생산에 들어가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 부상병들에게 닿았다. 감염으로 죽어가던 부상병들이 살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1945년, 노벨상은 플레밍과 플로리와 체인 세 사람에게 함께 돌아갔다. 세균을 죽인 첫 열쇠는 천재의 설계가 아니었다. 휴가철 실험대에 씻지 않고 둔 곰팡이 접시 한 장, 그리고 버리지 않은 플레밍의 손이었다.

— 끝 —
카톡 한 줄

인류를 구한 항생제가, 알고 보면 휴가 가며 안 씻고 나간 접시 하나에서 시작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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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5)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