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세계사 한국인 모름· 공유받은 글

이름이 오르면 살았다

1944년 가을 크라쿠프, 한 독일인이 데려갈 사람들의 이름을 명단에 올렸다. 오른 사람은 살고, 못 오른 사람은 남았다.

↓ 스크롤
CH. 1

이름이 목숨을 갈랐다

1944년 가을, 플라슈프 수용소

한 독일인이 명단 하나를 내밀었다. 브뤼닐리츠의 새 공장으로 데려갈 노동자들의 이름이 한 줄씩 적혀 있었다.

명단에 오른 이름
1,100
명단의 한 줄을 두고, 위와 아래가 삶과 죽음으로 갈렸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브뤼닐리츠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오르지 못한 사람은 플라슈프에 남아,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기다렸다.

공장의 노동자 명부 한 장이, 어쩌다 살아남을 사람의 명단이 되었나.

CH. 2

쉰들러는 돈을 벌러 왔다

1939년, 크라쿠프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몇 주 뒤, 오스카 쉰들러가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독일에서 온 사업가였고, 나치당원이었다.

쉰들러는 자브워치에의 파산한 법랑 그릇 공장을 인수했다. 군용 식기와 탄피를 찍어내는 공장으로 바꿨다. 공식 이름은 데에프(DEF), 사람들은 '에말리아'라 불렀다.

쉰들러가 유대인을 고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임금이 가장 쌌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한몫 잡으러 온 남자에게, 크라쿠프의 유대인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1939년 쉰들러
전쟁으로 돈 벌러 온 사업가
5년 뒤 쉰들러
전 재산을 유대인 목숨값에 쓴 남자

돈을 벌러 온 남자를 바꿔 놓은 것은, 1943년 봄 크라쿠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CH. 3

쉰들러가 뇌물을 쓰기 시작했다

1943년 3월, 크라쿠프 게토

1943년 3월, 독일군이 크라쿠프 게토를 청산했다. 유대인들은 플라슈프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장은 아몬 괴트, 발코니에서 수감자를 쏘곤 하던 자였다.

쉰들러는 뇌물과 인맥을 동원해, 자기 공장 안에 플라슈프의 부속 수용소를 세울 허가를 받아냈다. 유대인 노동자들이 괴트의 총구에서 떨어져, 공장 마당 막사에서 잠들 수 있게 됐다.

공장 막사의 노동자
1,000여 명
철조망 안이 아니라 쉰들러의 공장 마당에서, 괴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냈다.

한번 시작된 뇌물은 멈출 수 없었다. 노동자를 지키려면 관리들에게 계속 돈을 찔러줘야 했고, 쉰들러는 법랑 공장에서 번 돈을 뇌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4년, 플라슈프마저 문을 닫게 됐다.

CH. 4

쓸 만한 포탄은 없었다

1944년 가을, 브뤼닐리츠

1944년 가을, 플라슈프가 문을 닫게 됐다. 노동자들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쉰들러는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공장을 고향 근처 브뤼닐리츠로 옮기고, 군수 공장으로 바꾸겠다고 신청했다.

군수 공장에는 '필수 노동자' 명단이 필요했다. 쉰들러가 데려갈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값은, 관리들에게 건넨 뇌물이었다. 명단은 곧 쉰들러가 목숨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들의 목록이었다.

명단에 오른 여성 300여 명을 실은 기차가 아우슈비츠로 잘못 보내졌다. 여성들은 몇 주 동안 아우슈비츠에 갇혔다. 쉰들러가 관리들에게 건넨 뇌물이 협상 끝에 여성들을 도로 브뤼닐리츠로 데려왔다. 아우슈비츠에서 산 채로 풀려나 돌아온 이송은, 전쟁을 통틀어 손에 꼽혔다.

브뤼닐리츠 공장은 포탄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검사를 통과한 포탄이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쉰들러는 다른 공장에서 포탄을 사다 납품량을 채웠다. 노동자들을 '전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겨두려면, 공장은 아무것도 제대로 만들지 않아야 했다.

브뤼닐리츠가 만든 쓸 만한 포탄
0
쉰들러는 자기 군수 공장이 어떤 무기도 못 만들도록 내버려 뒀다.
CH. 5

명단의 이름들은 살아남았다

1945년 5월 8일, 브뤼닐리츠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했다. 브뤼닐리츠 공장 바닥에 노동자들이 모였다. 노동자 한 사람이 금니를 뽑아 녹여, 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쉰들러에게 건넨 반지에 새겨진 탈무드 구절

전쟁이 끝나고 쉰들러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했다. 재산은 뇌물로 이미 사라진 뒤였다. 말년의 쉰들러는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았다.

오스카 쉰들러는 1974년 세상을 떠나, 예루살렘 시온 산에 묻혔다. 나치당원 가운데 시온 산에 묻힌 사람은 오스카 쉰들러뿐이다.

1945년, 명단의 이름
1,100여 명
오늘날, 명단의 후손
수천 명
— 끝 —
카톡 한 줄

쉰들러의 명단이 사람을 살린 진짜 힘은 용기가 아니라, 이름마다 얹은 전 재산의 뇌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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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