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글로벌 휴머니티· 공유받은 글

다섯 살 딸의 목에서 백신이 나왔다

1963년 봄 필라델피아, 다섯 살 딸이 밤에 아버지를 깨웠다. 그는 딸을 재우는 대신 실험실로 갔다.

↓ 스크롤
CH. 1

백신 상자에 한 아이의 이름이 있다

제릴 린 균주

약국 냉장고 속 볼거리 백신 상자에는 지금도 사람 이름 하나가 적혀 있다. 제릴 린 스트레인. 제릴 린은 1963년에 다섯 살이던 여자아이다.

볼거리 백신은 전 세계 아이 수억 명의 팔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름의 주인 제릴 린은, 백신이 아니라 환자였다.

CH. 2

1963년 볼거리엔 백신이 없었다

볼거리가 흔하던 시절

1963년, 볼거리는 아이들이 으레 앓는 병이었다. 턱 밑이 부어오르고 열이 났다. 대개는 나았지만, 일부는 귀가 먹거나 뇌가 붓기도 했다. 막을 백신은 없었다.

1963년
볼거리 백신 0종
지금
MMR 한 방에 포함

필라델피아 교외 라파예트힐에 바이러스 학자 한 명이 살았다. 이름은 모리스 힐먼. 낮에는 머크 제약 실험실에서 백신을 만들었다.

1963년 봄의 어느 밤, 라파예트힐의 힐먼 집에서 다섯 살 제릴 린이 목이 아프다며 잠에서 깼다. 아버지 힐먼이 딸의 부어오른 턱을 보았다. 볼거리였다.

CH. 3

힐먼은 딸의 목을 면봉으로 훑었다

새벽의 결정

여느 아버지라면 딸을 다독여 재웠을 것이다. 힐먼은 다른 길을 택했다. 발병 직후 급성기의 목에서라야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채취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힐먼은 제릴 린을 잠깐 재워두고 머크 실험실로 차를 몰았다. 배양액과 채취 도구를 챙겨 라파예트힐 집으로 돌아왔다.

힐먼은 제릴 린을 깨워 목 안쪽을 면봉으로 훑었다. 면봉을 배양액이 든 병에 담갔다. 딸을 다시 재운 뒤, 병을 들고 실험실로 돌아갔다.

아픈 딸의 목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백신의 출발점이 되었다.

CH. 4

동생 커스틴이 언니의 균주를 맞았다

언니의 바이러스, 동생의 백신

채취가 끝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곧바로 주사할 수는 없었다. 힐먼은 바이러스를 옮겨 심으며 수십 번 약하게 길들였다.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면역만 남기려는 작업이었다.

몇 년이 걸렸다. 약해진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시험해야 했다. 초기 시험에서 백신을 맞은 아이들 중에 힐먼의 둘째 딸 커스틴이 있었다.

커스틴은 언니 제릴 린의 목에서 나온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을 맞았다. 커스틴 곁에서 언니 제릴 린이 동생을 달랬다.

1967년, 머크가 볼거리 백신 '멈프스백스(Mumpsvax)'를 허가받았다. 채취부터 4년.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백신이었다. 파란색과 흰색 상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Mumpsvax — Jeryl Lynn Strain
1967년 머크 볼거리 백신 상자
CH. 5

제릴 린 균주는 지금도 쓰인다

지금도 쓰이는 이름

1963년 봄 이후 60년이 넘게 지났다. 제릴 린 힐먼은 어른이 되었다. 볼거리 백신의 제릴 린 균주는 지금도 전 세계 MMR 백신 안에서 쓰인다.

모리스 힐먼이 만든 백신
40여
미국 권장 백신 14종 중 8종

볼거리 예방주사를 맞은 아이는, 1963년 어느 밤 목이 아파 깬 다섯 살 아이의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된다. 이름은 백신 안에 남았다.

— 끝 —
카톡 한 줄

지금도 아이들이 맞는 MMR 백신 속 볼거리 균주 이름이 '제릴 린'인 건, 1963년 아픈 딸의 목을 훑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출처 (9)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