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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글로벌 휴머니티· 공유받은 글

눈꺼풀 하나로 책을 썼다

1995년 12월 파리, 마흔셋 편집장이 쓰러졌다. 깨어나 움직인 건 왼쪽 눈꺼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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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움직이는 건 눈꺼풀 하나였다

왼쪽 눈꺼풀 하나

1995년 겨울, 한 남자가 병상에서 깨어났다. 온몸에서 움직이는 건 왼쪽 눈꺼풀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서점에는 130쪽짜리 책 한 권이 꽂혀 있다. 저자 이름은 장 도미니크 보비. 마침표 하나까지 눈꺼풀 깜빡임으로 골랐다.

보비가 움직일 수 있던 몸
1
왼쪽 눈꺼풀. 책 한 권을 쓴 유일한 도구였다.
CH. 2

보비는 파리 최고의 잡지를 만들었다

편집장의 12월

1995년, 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판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패션과 화보와 마감으로 채워진 삶이었다. 말과 글이 직업이었다.

1995년 12월 8일, 보비가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마흔세 살이었다.

스무날 뒤 보비가 깨어났다. 의식은 멀쩡했다. 그런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입도, 팔도, 다리도.

의사들은 감금 증후군이라 불렀다. 정신은 온전한데 몸에 갇히는 병이다. 보비에게 남은 움직임은 왼쪽 눈꺼풀 하나였다. 오른쪽 눈은 감기지 않아 각막이 마르는 걸 막으려 의사들이 실로 꿰매 닫았다.

1995년 12월 초
엘르 편집장
1995년 12월 말
눈꺼풀 하나
CH. 3

보비는 눈꺼풀로 책을 받아쓰게 했다

받아쓰는 사람

말이 직업이던 사람에게 남은 건 눈꺼풀 하나였다. 보비는 눈꺼풀 하나로 책을 쓰기로 했다.

언어치료사 상드린 피슈가 알파벳을 다시 짰다. A, B, C 순서가 아니라 프랑스어에서 자주 쓰는 순서로. E가 맨 앞에 왔다.

E · S · A · R · I · N · T · U · L …
보비가 받아쓸 때 쓴 알파벳 순서 — 자주 쓰는 글자부터

출판사가 클로드 망디빌을 보냈다. 망디빌이 알파벳을 소리 내 읽으면, 원하는 글자에서 보비가 눈을 깜빡였다. 한 글자, 또 한 글자.

낮에 받아쓰기 전에, 보비는 밤새 문장을 머릿속에서 썼다. 외우고, 고치고, 다시 외웠다. 아침이 오면 눈꺼풀로 받아쓰게 했다.

CH. 4

보비가 20만 번 눈을 깜빡였다

20만 번의 깜빡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단어를 받아쓰는 데 평균 2분이 걸렸다.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이레, 두 달이 걸렸다.

책 한 권을 위한 눈 깜빡임
약 20만
130쪽을 글자 하나씩. 한 단어에 2분.

그런데 진짜 책은 병상 침대가 아니라 보비의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돼 있었다. 눈꺼풀은 머릿속 문장을 밖으로 꺼내는 통로였을 뿐이다.

책 제목이 보비의 처지를 그대로 담았다. '잠수종과 나비'. 몸은 깊은 물속 잠수종에 갇혔지만, 마음은 나비처럼 어디든 날았다.

CH. 5

보비는 출간 이틀 뒤 떠났다

이틀

1997년 3월 7일, '잠수종과 나비'가 서점에 깔렸다. 유럽에서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7년 3월 9일, 보비가 폐렴으로 눈을 감았다. 책이 나온 지 이틀 뒤였다.

출간과 죽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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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먼저 세상에 나왔다.

20만 번의 깜빡임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쓴 문장이었다. 잠수종은 가라앉았고, 나비는 책 속에 남았다.

— 끝 —
카톡 한 줄

눈꺼풀 하나로 130쪽짜리 책을 쓴 사람이 있는데, 알고 보면 몸이 아니라 갇힌 마음이 쓴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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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8)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