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사라진 풍습· 공유받은 글

배달원이 쌀가게 주인이 됐다

1934년 서울 신당동, 한 배달원이 밤마다 쌀 자전거를 연습했다. 몇 해 뒤 주인은 그에게 가게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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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배달원이 자전거를 밤마다 연습했다

1934년, 서울 신당동

한 쌀가게에 배달원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밤마다 배달 자전거를 붙들고 연습했다.

몇 해 뒤, 배달원은 일하던 쌀가게를 통째로 물려받았다. 주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CH. 2

배달원이 서울로 올라왔다

쌀가게가 동네의 중심이던 시절

1930년대 서울에서 쌀은 가게에서 됫박으로 팔렸다. 집에 쌀이 떨어지면 쌀가게에 기별했고, 배달원이 자전거에 쌀가마를 싣고 골목을 돌았다.

골목을 돌던 배달원 중 하나는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다.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배달원은 열아홉이 되던 1933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배달원은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다, 이듬해 서울 신당동의 쌀가게 복흥상회에 배달 일자리를 얻었다.

그때 (1930년대)
쌀은 자전거로 골목까지 배달됐다
지금
쌀은 마트 진열대·택배 상자로 온다
CH. 3

배달원이 자전거에 모든 걸 걸었다

배달원은 배달만 하지 않았다

배달원은 일을 배달로 끝내지 않았다. 밤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연습했고, 무거운 쌀가마를 자전거에 균형 있게 싣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몇 달 만에 배달원은 가게에서 가장 빠른 배달꾼이 됐다. 부기를 할 줄 알았던 배달원에게 주인은 가게 장부까지 맡겼다. 가게의 셈과 물건 관리가 배달원의 손을 거쳤다.

집을 나온 지 3년 뒤 배달원의 월급
쌀 20가마
배달원 한 사람 몫이었다

주인은 배달원을 점점 더 믿었다. 그런데 주인에게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CH. 4

주인이 아들 대신 배달원을 택했다

1938년, 주인의 결정

복흥상회 주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은 주색잡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주인은 재산을 탕진하는 외아들 대신, 성실한 배달원에게 가게를 넘겼다. 1938년, 배달원은 복흥상회를 물려받아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꿨다.

그러나 경일상회는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일제가 전시체제로 쌀을 배급제로 묶으면서 개인 쌀가게는 문을 닫아야 했다.

가게를 잃은 배달원은 쌀을 떠났다. 1940년, 배달원은 자동차 정비로 업을 옮겼다.

CH. 5

쌀집 자전거는 골목에서 사라졌다

골목에서 사라진 자전거

대형마트와 아파트 단지가 늘면서 동네 쌀가게와 쌀 배달 자전거는 골목에서 사라졌다. 이제 쌀은 마트 진열대와 택배 상자로 온다.

쌀 배달 자전거를 끌던 신당동 배달원의 이름은 정주영이었다. 훗날 현대를 세운 사람이다.

— 끝 —
카톡 한 줄

정주영이 현대 세우기 전엔 남의 쌀가게 배달원이었는데, 주인이 재산 탕진하던 외아들 대신 그 배달원에게 가게를 통째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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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