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사라진 풍습· 공유받은 글

물지게가 아들을 경성제대에 보냈다

1934년 봄 서울, 물지게 지던 함경도 사내가 신문 미담란에 실렸다. 외아들이 경성제대에 붙었다.

↓ 스크롤
CH. 1

함경도 물장수가 신문에 실렸다

1934년 봄, 서울

물지게를 지고 골목을 돌던 함경도 사내가 그해 봄 신문 미담란에 실렸다.

외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붙었다. 물지게 하나로 조선 최고 대학까지 자식을 밀어 올린 것이다.

CH. 2

북청 사내들이 서울 물을 져 날랐다

물을 사람이 지게로 나르던 시절

상수도가 놓이기 전, 서울에서 물은 사서 쓰는 물건이었다. 1800년대 초부터 함경도에서 올라온 사내들이 우물물과 약수를 길어 집집마다 배달했다.

함경도 물장수 가운데 북청 출신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물장수라 하면 곧 북청 물장수를 뜻하게 됐다.

북청에서 올라온 이구영도 물장수였다. 이구영은 아침마다 석유통 두 개를 물지게 양쪽에 걸어 지고 골목을 돌았다.

그때 (1900년대)
물은 사람이 물지게로 골목까지 져 날랐다
지금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온다
CH. 3

이구영이 물지게 벌이를 아들에게 걸었다

물지게꾼이 물지게만 지지 않았다

북청 물장수에게는 유별난 데가 있었다. 벌이는 겨우 자식 학비를 댈 정도였는데도, 자식을 학교에 앉히는 일에 매달렸다.

이구영도 외아들 이재옥을 학교에 넣었다. 물지게로 버는 돈을 아들 공부에 쏟았고, 한번 정한 길을 되돌리지 않았다.

1930년대 조선에서 상급학교는 좁은 문이었다. 웬만한 집안도 자식 하나 위 학교로 올리기가 버거웠다.

물장수의 힘은 조직에 있었다. 북청 사람이 아니면 서울에서 물장수를 하기 어려울 만큼, 물장수들은 급수 구역을 나눠 지켰다. 물 긷는 자리는 사고파는 재산이었다.

CH. 4

이재옥이 경성제국대학에 붙었다

1934년, 합격자 명단에 오른 이름

1934년 봄, 경성제국대학 합격자 명단에 이재옥의 이름이 올랐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마친 뒤였다.

경성제국대학은 조선에 세워진 첫 대학이자, 조선인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웬만한 집안도 넘보기 어려운 자리였다.

물지게로 자식을 대학 안에 들여보낸 사연은 1934년 동아일보에 입학 미담으로 실렸다. 북청 물장수 이구영과 아들 이재옥의 이름이 신문에 남았다.

1934년, 물장수의 아들이 붙은 곳
경성제국대학
조선인에게 좀처럼 열리지 않던 문
CH. 5

물지게가 골목에서 사라졌다

수도가 물장수의 시대를 끝냈다

물장수를 밀어낸 것은 수도였다. 1908년 서울에 상수도가 놓였고, 1914년 물장수 조합이 해체됐다. 물장수는 6·25 전쟁 무렵까지 남았다가, 수도꼭지가 골목마다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췄다.

물지게는 사라졌지만 북청 물장수가 남긴 자리는 골목이 아니라 학교였다. 함경도에서 서울로 물을 지고 올라온 사내들은, 자식을 물지게 대신 책상 앞에 앉히려고 물지게의 무게를 졌다.

— 끝 —
카톡 한 줄

옛날 서울 물은 함경도 북청 사람들이 지게로 져다 팔았는데, 북청 물장수들 교육열이 대단해서 물지게 벌이로 아들을 경성제대까지 보냈다더라.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 영상으로 보기
출처 (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