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자가 공주가 됐다
1920년 2월, 베를린 운하에서 한 여자가 건져졌다. 이름을 대지 않았다. 3년 뒤, 자신이 죽은 러시아 공주라고 했다.
이름 없는 여자가 운하에서 건져졌다
운하에서 건진 여자
1920년 2월 27일, 베를린 란트베어 운하. 한 여자가 물에 뛰어들었다. 경찰이 건져냈지만, 그 여자는 자기 이름을 끝내 대지 않았다.
병원 기록엔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다른 말이 적혔다. 정신병원 침대에서 2년이 흘렀다.
“이름 모를 여자”
2년째 되던 어느 날, 같은 병동의 환자 하나가 신문을 보다 말했다. 총살당한 러시아 황실의 딸 하나를 닮았다고.
1918년, 로마노프 일가가 사라졌다
모두가 살아있길 바란 공주
1918년 7월,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지하실. 니콜라이 2세와 가족이 총살됐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가문이 하룻밤에 끝났다.
유해는 서둘러 묻혔고,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확인되지 않은 죽음은 소문을 남겼다. 막내딸 아나스타샤만은 살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유럽을 돌았다.
온 유럽이 아나스타샤 생존설을 붙들었다. 총구 앞에 섰던 황실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소문이 잦아들지 않던 무렵, 베를린 병원의 이름 모를 여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나 앤더슨은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은 60년
병원을 나온 여자는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뒷날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안나 앤더슨은 한 번 꺼낸 말을, 죽을 때까지 거두지 않았다.
안나 앤더슨은 몸의 흉터를 근거로 댔다. 총상과 자상이라고 했고, 아나스타샤의 몸에 있던 흔적과 맞아떨어진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1927년, 궁정 주치의의 아들 글렙 보트킨이 안나 앤더슨을 찾아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기억을 안나 앤더슨이 꺼내자, 글렙 보트킨은 확신했다.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믿는 쪽과 부정하는 쪽으로 갈렸다. 안나 앤더슨은 법정에서 결판을 보기로 했다.
유전자가 60년의 답을 냈다
재판 32년, 그리고 유전자
1938년, 안나 앤더슨은 로마노프 상속을 걸고 소송을 냈다. 자신이 아나스타샤임을 법으로 증명하려 했다.
재판은 1970년까지 이어졌다. 32년. 독일 사법 사상 가장 긴 소송이었다. 하인, 귀족, 필적 감정가, 역사가가 줄줄이 증언대에 섰다.
결론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법원은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도, 아니라고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안나 앤더슨은 1968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살다, 1984년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화장됐다.
답은 화장된 뒤에 나왔다. 1970년대 수술 때 떼어낸 조직 한 조각이 병원에 남아 있었다. 1994년, 남은 조직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다.
이름 모를 여자의 정체가 74년 만에 드러났다.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1920년 베를린에서 자취를 감춘 폴란드 여공이었다.
가장 진짜 같던 여자는 아나스타샤가 아니었다
프란치스카 샨츠코프스카
프란치스카 샨츠코프스카는 1896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 중 베를린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1920년 무렵 자취를 감췄다. 안나 앤더슨이 운하에서 건져진 1920년이었다.
아나스타샤를 자처한 사람은 여럿이었다. 여럿 가운데 안나 앤더슨이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사람을 믿게 했다. 황실을 곁에서 본 이들까지 진짜라고 증언했다.
샬러츠빌의 묘비에는 안나 앤더슨의 이름이 적혀 있다. 폴란드 여공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60년 넘게 황실을 곁에서 본 사람들까지 믿게 한 아나스타샤, 알고 보면 폴란드 공장 노동자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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