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이 죽인 남자가 신이 됐다
903년 봄, 다자이후. 한 남자가 죄인으로 죽었다. 27년 뒤, 그를 버린 궁전에 벼락이 떨어졌다.
903년, 죄인 하나가 죽었다
903년 봄, 규슈 다자이후
한 남자가 다 쓰러져가는 관사에서 죽었다. 벼슬도, 이름도 빼앗긴 죄인이었다. 그를 내친 도읍의 조정은 조용히 안도했다.
조정이 지운 이름이 어떻게 신의 이름이 됐나.
학자가 우대신에 올랐다
845년에 태어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미치자네는 대대로 글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시로 이름났고, 젊어서 조정의 관리 시험을 통과했다.
그 무렵 헤이안 도읍은 후지와라 가문이 쥐고 있었다.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고, 그 외손자를 다시 천황으로 세우는 방식이었다. 학자 집안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위에서 막혀 있었다.
우다 천황이 후지와라를 견제하려고 미치자네를 끌어올렸다. 899년, 미치자네는 우대신이 됐다. 학자 출신이 밟을 수 있는 선을 훌쩍 넘은 자리였다.
미치자네가 도읍을 떠났다
901년, 참소 한 장
우다 천황이 물러나고 젊은 다이고 천황이 섰다. 후원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라가 다이고에게 고했다.
미치자네가 자기 사위인 황자를 천황으로 세우려 역모를 꾸민다는 참소였다. 다이고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미치자네는 우대신에서 다자이후의 한직으로 내쳐졌다. 규슈 끝, 이름만 벼슬이지 사실상 유배였다.
떠나기 전, 미치자네는 뜰의 매화나무 앞에 섰다. 평생 아낀 나무에게 시 한 수를 남겼다.
“동풍이 불거든 향기를 실어 보내다오.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는 마라.”
미치자네는 규슈로 내려갔고, 두 번 다시 도읍을 밟지 못했다.
도읍에 벼락이 떨어졌다
903년 이후, 도읍의 재앙
미치자네는 903년 다자이후에서 죽었다. 도읍은 잊으려 했다. 잊히지 않았다.
909년, 미치자네를 내친 도키히라가 서른아홉에 죽었다. 이어 다이고의 황태자가 죽고, 도읍에는 가뭄과 전염병이 돌았다. 사람들은 죽은 미치자네의 원한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930년 여름, 궁궐 세이료덴. 다이고 천황과 신하들이 모여 있을 때 벼락이 떨어졌다. 유배지의 미치자네를 감시했던 후지와라노 기요쓰라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벼락을 지켜본 다이고 천황은 몸져누웠고, 석 달 뒤 죽었다. 도읍은 미치자네가 하늘의 뇌신이 되어 돌아왔다고 믿었다.
겁에 질린 조정은 죄인을 도로 불러올렸다. 빼앗았던 관위를 되돌리고, 마침내 신으로 모셨다. 처음엔 벼락의 신이었다.
매화는 다자이후에서 핀다
천 년 뒤, 다자이후와 기타노
벼락의 신은 세월이 지나며 다른 신이 됐다. 살아서 최고의 학자였던 미치자네는, 죽어서 학문의 신 텐진으로 모셔졌다.
지금도 시험을 앞둔 일본 학생들이 기타노와 다자이후의 신사에 소원을 건다. 합격을 비는 나무판이 해마다 신사를 뒤덮는다.
미치자네가 노래했던 매화는 다자이후 본전 앞에서 봄마다 꽃을 피운다. 조정이 죄인이라 부른 사람에게,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절을 한다.
일본 수험생이 비는 학문의 신은, 알고 보면 조정이 벼락이 무서워 떠받든 유배 죄인이라고.
공유한 글은 영원히 남아요. 받은 사람도 같은 글을 볼 수 있어요.
출처 (8)
- Tenjin — World History Encyclopedia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한국어 위키백과
- Seiryoden Thunderbolt Striking Incident — Japanese Wiki Corpus
- Fujiwara no Kiyotsura — Japanese Wiki Corpus
- Dazaifu Tenmangu — jhistories
- Sugawara Michizane — Encyclopaedia Britannica
- Fujiwara Tokihira — Encyclopaedia Britannica
- When the East Wind Blows (매화 와카 '東風吹かば') — The Japan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