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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인물 비화· 공유받은 글

왕이 검객을 프랑스에서 불렀다

1536년 5월 19일, 런던 타워. 헨리 8세는 아내를 죽이는데, 도끼 대신 바다 건너 검객을 미리 불러 두었다.

↓ 스크롤
CH. 1

왕은 도끼를 쓰지 않았다

검객이 바다를 건넜다

1536년 5월 19일 아침, 런던 타워. 헨리 8세는 두 번째 왕비를 죽이기로 했다. 도끼는 쓰지 않았다.

잉글랜드에는 목을 치는 도끼도, 사형집행인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왕은 바다 건너 프랑스 칼레에서 검을 쓰는 사람을 따로 불렀다. 아내 한 사람을 베기 위해서였다.

CH. 2

앤 불린은 왕비였다가 죄수가 됐다

3년 전, 같은 여자가 왕관을 썼다

앤 불린은 3년 전만 해도 잉글랜드의 왕비였다. 1533년, 헨리 8세는 첫 왕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돌리려고 로마 교황청과 갈라섰다. 나라의 교회를 통째로 바꿔 가며 앤과 결혼했다.

1533년 9월, 앤은 딸을 낳았다. 훗날 엘리자베스 1세가 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헨리가 원한 건 아들이었다. 1536년 봄, 앤은 아들을 안겨주지 못했고, 왕의 마음은 다른 여인에게 가 있었다.

1536년 5월, 앤은 간통과 반역 혐의로 타워에 갇혔다. 5월 15일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자 왕은 프랑스 칼레로 검객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검객에게 치른 삯
23파운드
6실링 8펜스 = 70 노블. 오늘날로 약 £7,800에 이르는 값이었다.
CH. 3

앤은 죽음을 농담으로 맞았다

죽음을 앞두고, 앤이 웃었다

처형을 앞둔 며칠, 앤은 타워에 갇혀 있었다. 타워의 책임자 윌리엄 킹스턴이 곁을 지켰다. 앤은 처형이 미뤄졌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실망했다.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냈기 때문이었다.

앤은 도망치려 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검으로 처형된다는 말을 듣고는, 집행인이 능숙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했다.

“집행인이 아주 능숙하다고 들었소. 게다가 내 목은 가느니까.”
— 앤 불린 — 킹스턴이 남긴 당대 기록

곧 두 손으로 자기 목을 감싸며 웃었다고, 킹스턴은 적었다. 죽음을 앞둔 여자가 택한 건, 농담이었다.

CH. 4

검은 한 번, 도끼는 여러 번이었다

왕이 도끼를 마다한 이유

1536년 5월 19일 아침, 앤은 타워그린의 낮은 처형대에 올랐다. 짧은 연설을 했다. 자신을 심판한 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훌륭한 군주라고 청했다.

프랑스식 처형은 잉글랜드의 방식과 달랐다. 죄수는 피 묻은 나무 도막에 엎드리지 않았다. 앤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운 채, 계속 기도했다.

왕이 도끼가 아니라 검객을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도끼는 목을 여러 번 내리쳐야 할 때가 있었지만, 검은 단 한 번이면 끝났다. 목격자들은 검객이 앤의 목을 한 번에 베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오래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하나 더 붙는다. 당대 기록에는 없지만, 검객이 조수를 향해 '검을 가져오라' 외쳤고 앤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반대편에서 소리 없이 베었다는 것이다.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다. 다만 검이 한 번에 떨어졌다는 것만큼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CH. 5

잉글랜드는 왕비를 반역자로 묻었다

표식 없는 무덤에 눕다

시녀들이 앤 불린의 머리와 몸을 흰 천에 감쌌다. 관이 준비돼 있지 않아, 활대를 담아 두던 낡은 느릅나무 궤에 시신을 넣었다.

궤는 타워 안 세인트피터 애드 빈큘라 예배당 바닥에 묻혔다. 이름도, 표식도 없었다. 1533년 왕관을 씌운 여자를, 잉글랜드는 반역자로 묻었다.

왕은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 깔끔하게 끝나기를 바랐다. 앤 불린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비는, 실은 깔끔한 처형을 위한 장치였다.

— 끝 —
카톡 한 줄

앤 불린이 목을 벨 검을 끝내 못 본 건, 검객이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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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