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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인물 비화· 공유받은 글

왕은 18년을 더 살았다

1623년 3월, 창덕궁. 반정군이 왕을 끌어냈다. 그는 섬에서 18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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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유배가 재위보다 길었다

1623년, 왕이 끌려 나왔다

1623년 3월, 창덕궁. 반정군이 궁을 에워쌌다. 왕이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는 섬에서 18년을 더 살았다.

왕좌에서 내려온 뒤
18년
재위 15년보다 길었다

폐위된 왕은 보통 오래 살지 못했다. 광해군은 달랐다.

CH. 2

광해군은 전쟁이 키운 왕이었다

왕이 되기까지

광해군은 1575년에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세자가 되어, 남쪽을 돌며 흩어진 조정을 수습했다.

1608년,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다. 무너져 가는 명과 새로 일어선 후금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온전히 서지 않는 외교를 폈다. 명에 군사를 보내면서도 후금과 등지지 않으려 했다.

1623년, 서인이 군사를 일으켰다. 명분은 두 가지였다. 광해군이 어머니 인목대비를 가두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것, 그리고 명을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연산군
폐위 두 달 뒤 죽음
광해군
폐위 18년 뒤 죽음
CH. 3

가족이 먼저 무너졌다

강화도의 땅굴

폐위된 광해군은 강화도로 보내졌다. 가족도 함께 위리안치됐다. 집 둘레를 가시울타리로 막고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형벌이었다.

아들 이지가 방바닥을 팠다. 가위와 인두로 흙을 긁어 21미터 굴을 뚫었다. 담장 밖으로 나온 순간 붙잡혔다.

아들이 판 땅굴
21미터
가위와 인두로 뚫었다

굴을 판 대가로 이지는 자결을 명받았다. 탈출을 지켜보던 며느리 박씨는 사흘을 굶다 목을 맸다. 1623년 가을, 부인 유씨가 화병으로 세상을 떴다.

1623년 한 해에 광해군은 아들과 며느리와 아내를 잃었다. 혼자 남은 광해군은 죽지 않았다. 살아남기를 택했다.

CH. 4

나인은 광해군을 영감이라 불렀다

제주, 마지막 섬

1636년 병자호란이 터졌다. 전쟁이 끝나자 조정은 광해군을 가장 먼 곳으로 옮겼다. 혹시라도 폐왕을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생길까 두려웠다. 1637년 6월, 유배선이 제주에 닿았다.

제주에서도 위리안치였다. 속오군 서른 명이 교대로 처소를 둘러쌌고, 방문은 자물쇠로 봉해졌다.

폐왕 한 사람을 지킨 군사
30명
교대로 처소를 둘러쌌다

나인이 광해군을 '영감'이라 부르며 함부로 대해도, 광해군은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왕으로 산 15년보다 긴 세월을, 광해군은 그렇게 견뎠다.

CH. 5

광해군은 제주에서 눈을 감았다

1641년, 제주

1641년 음력 7월 1일, 제주읍성. 광해군이 예순일곱에 숨을 거뒀다. 왕에서 쫓겨난 지 열여덟 해째였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제주목사 이시방이 상을 치렀다. 광해군의 관은 두 해 뒤 남양주로 옮겨져, 생모 공빈 김씨의 무덤 가까이 묻혔다.

조선의 임금 스물일곱 가운데, 왕좌에 있던 날보다 유배지에 있던 날이 더 긴 임금은 광해군뿐이었다.

— 끝 —
카톡 한 줄

광해군은 왕으로 산 15년보다, 쫓겨난 뒤 섬에서 견딘 18년이 더 길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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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5)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