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Calypso · 미스터리·미제· 공유받은 글

박정희의 오른팔이 파리에서 사라졌다

1979년 10월 7일 저녁, 파리.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남자가 카지노 문을 나선 뒤 지워졌다.

↓ 스크롤
CH. 1

시신은 지금도 없다

1979년 10월 7일, 파리

저녁 7시, 쉰네 살의 김형욱이 카지노 문을 나섰다. 그 뒤로 세상 어디에서도 그를 본 사람이 없다.

발견된 시신
0구
지금까지

김형욱은 6년 동안 대한민국의 정보를 쥐었던 남자였다.

CH. 2

김형욱은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자리

1963년부터 1969년까지,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정보와 공작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6년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으로는 가장 긴 재임이었다. 사람들은 중앙정보부를 두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1969년, 김형욱은 자리에서 밀려났다. 권력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옮겨졌고, 몇 해 뒤 미국으로 떠났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정권의 제2인자
1970년대 중반
미국의 망명객

밀려난 권력자는 태평양 건너에서 입을 다물지 않았다.

CH. 3

김형욱이 입을 열기로 했다

1977년, 워싱턴

1977년 6월 2일, 김형욱은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정희 정권의 내부 비리를 공개적으로 꺼냈다.

6월 22일, 김형욱은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대에 섰다. 중앙정보부가 미국 정치권에 어떻게 손을 뻗었는지 털어놓았다.

김형욱은 일본에서 회고록도 준비하고 있었다. 한때 자기가 지켰던 정권의 비밀을, 증언대에서 자기 손으로 풀고 있었다.

“용서란 있을 수 없다”
— 1977년 6월, 서울에서 내려온 지시

증언이 끝난 뒤, 김형욱의 이름은 서울에서 지워야 할 이름이 되었다.

CH. 4

김형욱은 파리에서 지워졌다

1979년 10월, 파리

1979년 10월 4일, 김형욱이 파리에 도착했다. 돈이 필요했고, 주프랑스 공사 이상열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

이상열은 중앙정보부의 프랑스 거점장을 겸하고 있었다. 돈을 대줄 사람을 소개하겠다며 10월 7일 샹젤리제에서 만나기로 했다.

10월 7일 저녁, 김형욱은 카지노를 나섰다.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요원들이 고용한 외국인 두 명이 김형욱을 붙잡았다. 시신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훗날 한 전직 공작원은 김형욱을 마취시킨 뒤 파리 근교 양계장의 대형 믹서에서 없앴다고 주장했다. 확인된 시신은 없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김형욱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파리에서 살해됐다고 결론지었다.

CH. 5

19일 뒤, 박정희가 죽었다

그리고 19일 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궁정동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다.

김형욱 실종 → 박정희 피살
19일

김형욱을 파리에서 지우라 명령했던 김재규는, 19일 뒤 박정희를 쏘았고 이듬해 형장에서 삶을 마쳤다. 김형욱의 시신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 끝 —
카톡 한 줄

박정희의 오른팔 김형욱이 파리에서 시신도 없이 사라진 건, 미국 의회에서 정권 비리를 증언한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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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