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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살인을 자백했다

1989년 화성, 스물두 살 청년이 하지도 않은 살인을 자백했다. 31년 뒤 법원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 스크롤
CH. 1

윤성여가 살인을 자백했다

1988년 화성, 한 청년이 붙잡혔다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 열세 살 소녀가 자기 집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듬해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농기계를 고치던 스물두 살 윤성여를 붙잡았다.

며칠 뒤 윤성여는 살인을 자백했다. 1심 법원은 사형을,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스물두 살이 감옥 문을 들어섰다.

스물두 살에 확정된 형
무기징역

그런데 윤성여는 감옥에 들어간 첫날부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자기는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CH. 2

화성은 이미 공포에 빠져 있었다

동네에서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화성 일대에서는 여성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고 있었다. 뒷날 이춘재 연쇄살인으로 불리게 되는 사건들이었다. 온 나라가 지켜봤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8차 사건은 결이 달랐다. 다른 사건들이 논밭과 야산에서 일어난 것과 달리, 열세 살 소녀는 집 안에서 변을 당했다. 경찰은 8차 사건을 연쇄살인의 모방범죄로 보고, 동네 사람 중에서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경찰이 지목한 사람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던 스물두 살 윤성여였다. 결정적 근거는 현장에서 나온 체모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발견된 체모를 윤성여의 것이라고 감정했다.

화성 연쇄살인
10건 중 1건
재판까지 간 사건은 8차, 단 하나였다
CH. 3

경찰이 자백을 받아냈다

1989년, 자백이 만들어졌다

윤성여는 처음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윤성여를 붙잡아 두고 조사를 이어갔다.

뒷날 법원이 확인한 조사 과정은 이랬다. 적법한 절차 없이 붙잡아 가둔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쪼그려뛰기를 시켰다. 며칠이 지나자 윤성여는 자백했다.

“불법으로 체포·감금한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쪼그려뛰기를 시키는 가혹행위였다.”
— 재심 재판부가 인정한 1989년의 조사

자백은 법정에서 유죄의 근거가 됐다. 한번 받아들여진 자백은 되돌리기 어려웠다. 윤성여는 스무 해를 감옥에서 보냈다.

CH. 4

이춘재가 8차도 자기 짓이라 했다

2019년, 이춘재의 이름이 돌아왔다

2019년, 경찰은 오래된 화성 사건 증거물을 다시 검사했다. 남아 있던 DNA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춘재였다. 1994년 처제를 살해한 죄로 이미 무기수로 복역 중인 사람이었다.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윤성여가 20년을 대신 산 8차 사건도 자기 짓이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윤성여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이 다시 들여다본 1989년의 감정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현장에서 나온 체모는 여덟 점이었지만 국과수는 두 점만 골라 검사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분석 수치를 바꿨다. 윤성여를 범인으로 만든 결정적 증거는 만들어진 것이었다.

현장의 체모
8점 중 2점
국과수는 검증 안 된 방법으로 수치를 바꿨다
CH. 5

법원이 윤성여에게 사죄했다

2020년 12월, 누명이 벗겨졌다

2020년 12월 17일, 수원지방법원. 재판부는 윤성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재판장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수원지법 재심 재판장, 2020년 12월

1989년에 붙잡힌 스물두 살은 쉰이 넘어 누명을 벗었다. 법원은 뒤이어 형사보상금 25억여 원을, 국가가 물어야 할 배상금 18억여 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보낸 스무 해는 어떤 돈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윤성여는 뒷날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버텼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내일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윤성여
— 끝 —
카톡 한 줄

화성 연쇄살인 열 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힌' 8차 사건, 잡힌 사람은 20년을 억울하게 산 무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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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