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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의학·신체· 공유받은 글

안전하다던 페인트를 입에 물었다

1917년 4월, 뉴저지 오렌지. 열여덟 그레이스가 붓을 입에 물었다. 안전하다고 했다.

↓ 스크롤
CH. 1

여공들이 붓끝을 입에 물었다

빛나는 숫자

1917년 4월, 뉴저지 오렌지. 열여덟 살 그레이스 프라이어가 붓끝을 입술로 뾰족하게 다듬었다.

붓을 입에 물고, 야광 페인트에 담그고, 시계 숫자를 그렸다. 하루에 수백 개씩. 회사는 이 동작을 '입술, 담그기, 칠하기'라고 불렀다.

여공들은 남은 페인트로 손톱과 이를 칠하기도 했다. 밤에 춤추러 나가면 어둠 속에서 얼굴이 빛났다.

회사는 페인트가 안전하다고 했다. 삼켜도 몸을 그냥 지나간다고.

CH. 2

라듐은 기적의 물질이었다

기적의 물질

1917년, 라듐은 기적의 이름이었다. 물약에도, 크림에도, 초콜릿에도 라듐이 들어갔다. 비쌀수록 몸에 좋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오렌지 공장에는 300명 가까운 여공이 일했다. 시계 숫자를 칠하는 일은 급여가 높고 손도 깨끗했다. 열여덟, 스물의 여자들이 줄을 서서 들어왔다.

같은 건물 위층 실험실에서는 화학자들이 라듐을 전혀 다르게 다뤘다.

위층 화학자
납 앞치마 · 상아 집게 · 납 가림막
아래층 여공
맨손 · 붓을 입술에

여공들은 왜 위층 남자들만 조심하는지 묻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들었으니까.

CH. 3

몰리 마자의 턱이 무너졌다

무너지는 턱

1922년 1월, 몰리 마자가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다. 스물넷, 오렌지 공장의 여공이었다.

치과의사가 이를 뽑았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뽑을 때마다 구멍은 더 커지고 피와 고름이 찼다.

의사가 손가락으로 턱뼈를 건드리자, 뼈가 재처럼 부서져 나왔다. 1922년 9월, 몰리 마자가 숨졌다. 사망 기록에는 사인이 '매독'으로 적혔다.

곧 다른 여공들의 턱과 등도 무너졌다. 그레이스 프라이어도 이가 빠지고 척추가 주저앉기 시작했다.

회사도 의사도 라듐 탓이 아니라고 했다. 그레이스 프라이어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하기로 결심했다. 변호를 맡겠다는 변호사를 찾는 데만 2년이 걸렸다.

CH. 4

무덤 속 뼈가 방사능을 냈다

열린 무덤

1927년, 다섯 여공이 회사를 고소했다. 한 사람당 25만 달러. 신문은 '죽을 날을 받아둔 다섯 여자의 사건'이라 불렀다.

회사는 재판을 미뤘다. 원고들이 먼저 죽기를 기다렸다. 증명도 쉽지 않았다. 회사는 라듐이 몸을 그냥 지나간다고 주장했으니까.

1927년 10월 15일, 몰리 마자의 무덤을 다시 열었다. 죽은 지 5년이었다. 유해의 뼈와 조직 구석구석에서 방사능이 나왔다. 라듐은 몸을 지나간 적이 없었다. 뼛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회사가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회사가 병원에 돌리던 자료에는 '라듐의 위험'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참고문헌은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위층 남자들이 납 앞치마를 두르고 상아 집게로 라듐을 집던 이유였다.

“몸에 한번 들어간 라듐은 없앨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 마리 퀴리, 1928
CH. 5

그레이스 프라이어는 오래 살지 못했다

빛의 값

1928년, 재판이 열리기 직전 회사가 합의했다. 다섯 여자 중 누구도 선서하려 팔을 들어 올리지 못했고, 두 사람은 침대에 누운 채였다.

1928년 합의금
1만 달러1인당
그리고 매년 600달러, 고통이 계속되는 한

그레이스 프라이어는 1933년에 숨졌다. 서른네 살이었다.

라듐 여공들이 뒤에 남긴 것은 두 가지였다. 노동자가 일하다 얻은 병으로 회사를 걸 수 있다는 판례와, 사람 몸이 견디는 방사능의 한계를 재기 시작한 과학이었다.

— 끝 —
카톡 한 줄

밤에도 빛나던 1920년대 야광 시계 숫자는, 붓을 입에 물고 칠하다 방사능에 중독된 여공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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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