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손이 주먹을 쥐었다
1990년대, 캘리포니아. 한 남자의 없는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없는 손이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환자는 없는 손이 아프다고 했다. 왼팔은 팔꿈치 위에서 잘려 나갔지만, 그 손은 주먹을 쥔 채 펴지지 않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느낌이 몇 년째 이어졌다. 없는 손가락을 펴려 아무리 애를 써도, 펴졌다는 신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 앞에 상자 하나를 놓았다. 마분지와 거울로 만든, 병원 장비라기엔 초라한 상자였다.
사라진 팔은 사라지지 않았다
팔을 잃은 사람 대부분이 빈자리를 느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 대부분은 없어진 자리에서 여전히 팔다리를 느꼈다. 가렵고, 저리고, 때로는 타는 듯 아팠다.
오랫동안 의사들은 통증이 잘린 신경 끝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신경을 더 위에서 잘랐다. 통증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1990년대, 샌디에이고.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다른 쪽을 의심했다. 통증이 팔에 있는 게 아니라, 팔이 사라진 뒤에도 남은 뇌의 몸 지도에 있는 것이라면.
라마찬드란은 뇌를 속이기로 했다
칼 대신 거울을 들었다
많은 환자에게 잃은 팔은 잘리기 전에 이미 마비돼 있었다. 사고로 신경이 뜯겨 나가 몇 달, 몇 년을 움직이지 못한 팔이었다.
라마찬드란은 뇌가 마비된 세월 동안 '명령해도 움직이지 않는다'를 학습했다고 봤다. 팔이 잘려 나간 뒤에도 학습만 남아, 뇌는 없는 팔을 마비된 채로 붙들고 있었다.
라마찬드란은 뇌가 배운 마비를 '학습된 마비'라 불렀다. 신경을 자르는 것으로는 학습을 지울 수 없었다. 라마찬드란은 반대로 가기로 했다. 뇌에게 팔이 다시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주면 학습이 풀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마분지 상자 가운데에 거울 한 장을 세웠다. 성한 오른손을 한쪽에 넣으면, 거울에 비친 오른손이 없어진 왼손 자리에 겹쳐 보였다.
환자가 없는 손을 처음 움직였다
거울 속에서 손이 펴졌다
1993년, 라마찬드란이 처음 상자를 시험한 환자는 팔이 뜯기는 사고로 왼팔을 팔꿈치 위에서 잃은 사람이었다. 절단 뒤 11년 동안 없는 팔이 아팠다.
환자가 성한 오른손을 상자에 넣고, 거울 속 손과 함께 두 손을 나란히 움직였다. 거울은 없어진 왼손이 움직이는 장면을 뇌에 돌려보냈다.
환자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없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주먹이 펴졌고, 통증이 즉시 잦아들었다.
통증은 잘린 신경에 있던 게 아니었다. 팔이 사라진 뒤에도 남은 뇌의 몸 지도에 있었고, 거울이 보낸 가짜 장면 하나가 뇌의 지도를 다시 썼다.
거울이 뇌의 지도를 고쳤다
지도를 고친 건 거울이었다
몇 주 뒤, 한 환자는 없는 팔의 통증이 사라졌다. 통증과 함께 환상지 자체도 옅어졌다.
이후 거울 상자는 뇌졸중으로 손이 굳은 사람에게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에게도 쓰였다. 값비싼 장비가 아니라 마분지와 거울 한 장이었다.
사라진 손이 아픈 건 손이 아니라 뇌가 그린 손이 아픈 것이었다. 뇌가 그린 손을 고치는 데는 거울 한 장이면 됐다.
없는 팔이 아픈 건 팔이 아니라 뇌가 그린 팔 때문이라, 거울 한 장이 수술로도 못 끈 통증을 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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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으로 보기출처 (5)
- Ramachandran & Rogers-Ramachandran, 'Synaesthesia in phantom limbs induced with mirrors', Proc. R. Soc. B (1996)
- 'It's All Done With Mirrors': V.S. Ramachandran and the Material Culture of Phantom Limb Research, Medical History (Cambridge, 2016)
- Mirror therapy — Wikipedia
- V. S. Ramachandran — Wikipedia
- Phantoms in the Brain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