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어 태어난 형제가 집을 둘 지었다
1811년 시암의 한 어촌에서 가슴이 붙은 채 두 아이가 태어났다. 둘은 63년을 하루도 떨어지지 못했다.
메클롱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1811년, 시암의 어촌
가슴 한가운데를 살로 된 띠가 잇고 있었다. 두 아이는 그 띠로 서로에게 묶인 채 세상에 나왔다.
의사들은 오래 못 산다고 했다. 창과 엥은 63년을 살았다. 하루도 떨어지지 못한 63년이었다.
두 형제가 무대 위에 올랐다
1829년, 보스턴
스코틀랜드 상인 로버트 헌터가 시암의 강에서 헤엄치는 두 형제를 봤다. 헌터는 미국 선장 에이벌 코핀과 함께 열일곱 살의 창과 엥을 배에 태웠다.
1829년 8월 16일, 두 형제는 보스턴에 내렸다. 창과 엥은 미국과 유럽의 무대를 돌았다. 사람들은 표를 끊고 붙어 있는 두 사람을 구경했다.
관객은 두 형제를 '샴쌍둥이'라고 불렀다. 시암에서 온 붙은 형제. 붙어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샴쌍둥이'라는 말은 창과 엥에게서 나왔다.
무대는 돈을 벌었다. 그런데 번 돈은 창과 엥의 손에 거의 오지 않았다.
창과 엥이 계약을 끊었다
1832년 7월, 뉴욕주 배스
두 형제는 코핀과 5년 계약을 맺고 있었다. 스물한 살이 되자 창과 엥은 계약이 자신들을 속였다는 걸 알았다.
1832년 7월, 뉴욕주 배스에서 창과 엥은 코핀을 떠났다. 스물한 살의 두 형제는 처음으로 자기 몫을 자기가 가졌다.
구경거리로 팔려 온 두 소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로 한 결정이었다. 창과 엥은 미국에 남기로 했다.
형제가 두 살림을 차렸다
1843년, 노스캐롤라이나
1839년, 창과 엥은 벙커라는 성을 얻고 미국 시민이 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 트랩힐에 150에이커를 사 농장을 열었다.
1843년 4월 13일, 창은 애들레이드 예이츠와, 엥은 세라 예이츠와 결혼했다. 두 신부는 자매였다.
창과 엥은 1마일 떨어진 곳에 집을 두 채 지었다. 사흘은 창의 집에서, 사흘은 엥의 집에서 지냈다. 두 집을 오가며 두 가정을 꾸렸다.
의사들은 여러 번 두 사람을 떼어 주겠다고 했다. 창과 엥은 끝내 거절했다. 하루도 떨어지지 못한 삶을, 두 형제는 반으로 나눠 각자의 살림으로 만들었다.
창과 엥은 같은 날 떠났다
1874년 1월 17일
1870년 뇌졸중으로 창의 오른쪽이 마비됐다. 1874년 1월 17일 새벽, 창이 잠결에 숨을 거뒀다. 뇌혈관이 막혔다.
잠에서 깬 엥은 곁에 죽은 형을 봤다. 두 시간쯤 뒤, 엥도 숨을 거뒀다. 63년을 이어 온 살의 띠가 마지막으로 창과 엥을 한 번 더 묶었다.
필라델피아 무터 박물관에 두 형제의 간이 아직 함께 놓여 있다.
'샴쌍둥이'라는 말이 실존한 두 형제한테서 나온 건데, 정작 두 사람은 노스캐롤라이나 농부로 63년을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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